‘국회선진화법’ 개정안 직권상정 요구 정면으로 제동

“입법부 수장이 불법임을 알면서도 위법한 행동을 할 수는 없다.”
여당이 단독으로 ‘국회선진화법(국회법)’ 개정 절차에 돌입하며 국회의장 직권상정을 압박하는 데 대해 정의화 국회의장이 정면으로 제동을 걸었다. 지난해 12월 노동 5법 등 쟁점법안 직권상정을 두고 청와대와 충돌을 빚은 데 이은 것으로 정 의장과 친정인 새누리당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정 의장은 2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에서의 의사결정은 어떻게 해서든 법의 테두리 내에서 해야 한다”며 “이것이 현행법 하에서 제가 직권상정을 못하는 이유다”고 선진화법 개정안의 직권상정을 거부하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새누리당은 18일 국회 운영위원회를 단독으로 소집해 5분만에 국회선진화법 개정안을 고의 부결시키며 개정 절차에 들어갔다. 새누리당은 상임위에서 부결된 법안은 의원 30명의 서명으로 본회의에 부의할 수 있다는 국회법 87조를 이용해 선진화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직접 부의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의사봉을 쥔 정 의장이 이를 불법으로 규정한 것이다. 정 의장은 “지난 67년 동안 단 한 번도 국회 운영절차에 관한 (법안을) 어느 일방이 단독 처리한 적이 없다”며 여야 합의 처리를 강조했다. 그는 “아시다시피 저는 신경외과 의사 출신이다. 뇌수술에 있어 수술은 성공했는데 환자가 돌아가실 수도 있다”고도 말했다.
정 의장은 그러면서 "여당에서 발의한 국회법 개정안은 선진화법의 문제점을 잘못 짚고 있다”며 중재안도 내놨다. 여당안이 직권상정 요건을 완화하는 것과 달리, 신속처리 안건(패스트 트랙) 지정 요건을 재적 의원 60% 이상 요구에서 과반 요구로 완화하는 내용이다. 정 의장은 18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 직무대행이었던 지난 2012년 4월에도 ‘국회선진화법’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어 이 같은 제안을 내놨다.
정 의장의 버티기에 새누리당은 부글부글 끓는 분위기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위기에 빠진 근로자들에게 힘을 보태려 하는 기업활력제고특별법 등 경제활성화법과 노동개혁에 반대하는 건 일종의 매국행위"라며 "이 법안의 상정을 막는 야당의 부당행위에 정 의장이 동조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도 “우리 당은 지난 1년간 선진화법 개정을 위해 처절한 몸짓을 했다”며 “과연 국회의장이 어디서 오신 분인가 하고 굉장히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청환기자 ch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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