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우 시인의 시 구절 중 “네가 앓았던 그 병, 나도 앓고 싶다”란 게 있었다. 정확한 인용은 아니나, 맥락은 얼추 맞지 싶다. 오래 전 읽었었고 몇 번 써먹기도 했다. 주로 사랑 고백이다. 겉으로 건강하고 잘나 보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묵은 상처나 고통이 없을 리 없다. 사람이 사람에게 매혹 당할 때 일차적으론 여러 외면적 요소들이 작용하겠지만, 정말 제대로 ‘꽂혀’ 버렸을 경우엔 외적인 조건들은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내 경우, 겉으론 잘 티가 안 나나 어느 순간 윤곽을 드러내면서 마음을 사로잡는 그늘 같은 것에 주로 눈이 간다. 어딘가 아프고, 결핍되어 보이고, 그래서 소외되어 보이고, 또 그래서 내가 지닌 상처와 많이 겹쳐 보이는 부분. 이 편에서 완전히 채워주거나 다스려줄 수 없더라도, 본인조차 외면하려 하는 상흔을 지긋이 들여다보고 같이 앓으면서 동질화되는 것. 그렇게 서로 거울이 되고 배면이 되어 꼭 닫아두었던 내면의 시야를 다른 방향으로 넓힐 수 있게 하는 것. 그런 식으로 마음이 포개지면 서로 떨어져 있더라도 몸이 일체화하는 기분이 들곤 한다. 한쪽이 아프면 다른 한쪽도 실제로 몸이 아파온다. 같은 부위, 같은 통증이 아니더라도 결국 어딘가를 같이 앓는다. 사랑의 물적 증거는 그렇듯 오묘하면서도 분명하다. 스스로 인정 않더라도 너무도 명백한 통증으로 전이된다. 그러니, 아프지 마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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