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명 사립대를 졸업한 회계사 박모(31)씨에게는 요즘 결혼정보업체 커플 매니저들의 전화가 끊이질 않는다. 매니저들은 박씨의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교사, 명문대 졸업생 등 배경이 좋은 여성들이 많다. 가입비를 받지 않을 테니 소개팅을 나가달라”며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고 읍소하고 있다. 박씨는 20일 “여자친구가 있어 거절했지만 공짜 소개팅 제안에 솔깃한 것은 사실”이라며 “손해 볼 것 없다는 생각에 가벼운 마음으로 소개팅 자리에 나가는 전문직 친구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고소득ㆍ전문직 남성만 우대하는 결혼정보업체의 영업 행태에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결혼정보업체를 통한 만남은 업체마다 다소 차이가 있으나 대개 200만~300만원 가입비를 받고 5~10회 가량 원하는 조건의 이성을 주선해 주는 식이다. 그러나 스펙에 상관없이 가입 여성 대부분이 의사나 판ㆍ검사 등 전문직 남성을 선호하는 탓에 쏠림 현상이 벌어진다. 이들은 가입비 면제, 주선 횟수 확대 등 혜택을 받으며 결혼 중개시장의 실세로 군림하고 있다. 한 결혼정보업체 커플 매니저 박모(28)씨는 “회원들의 실제 성비는 남녀가 각각 55%, 45%로 오히려 남자가 더 많지만 전문직 남성에 대한 수요는 언제나 많다”며 “이들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운영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남녀가 같은 전문직종에 종사하더라도 남성이 150만원을 내고 15회 가량의 소개팅 기회를 얻는 반면, 여성 회원은 남성의 3배가 넘는 500만원의 가입비를 지불하고도 8번만 소개팅을 할 수 있다.
이처럼 수급 불균형이 심화하다보니 전문직 남성을 위한 ‘끼워팔기’식 소개팅도 성행하고 있다. 유명 로스쿨 출신인 변호사 장모(33)씨는 2014년 국내에서 가장 등급이 높은 프리미엄 결혼정보업체에 가입했다. 커플매니저는 학력, 나이, 직업 등 배경이 완벽했던 김씨에게 “이상형에 꼭 맞는 상대를 주선해 줄 테니 그 전에 다른 여성들을 몇 명만 만나달라”고 부탁했다. 김씨는 “취향과 거리가 먼 상대였지만 매니저가 거듭 사정을 하는 통에 1시간 정도 형식적인 소개팅을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몇 차례 의미 없는 만남을 반복하다 회의감에 결국 업체를 탈퇴했다.
‘꼼수’ 운영의 피해는 결혼정보업체에 가입한 여성들에게 고스란히 돌아오고 있다. 대기업 3년차 직원 이모(31)씨는 지난해 수십만원을 내고 한 정보업체가 주관한 행사에 참석해 한의사들과 단체미팅을 가졌다. 하지만 이들은 한의사 커뮤니티에 올라온 무료미팅 주선 글을 보고 재미 삼아 나온 남성들이었다. 이씨는 “평생의 반려자를 찾으려 진지한 자세로 참여한 여성들과 달리 상대 남성들은 몇 시간 즐기려 나온 기색이 역력했다”며 “행사에서 성사된 커플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소비자원의 통계에 따르면 조건이 다른 소개팅 주선 등 결혼정보업체와 관련한 불만 접수는 260건에 달했다.
이승신 건국대 소비자정보학과 교수는 “결혼처럼 파급력이 막대한 의사결정에 신뢰가 무너지면 업체의 생명력 역시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며 “공정거래위원회 등 감시기관이 소비자 피해가 없도록 약관 규정을 엄격히 하는 한편, 업체 스스로도 단기 이익에 매몰되지 않도록 자정 노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준호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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