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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학 속에 인간의 탐욕 위선 담으려 했던 조지 오웰 잠들다

입력
2016.01.2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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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1월 21일

'동물농장'의 작가 조지 오웰이 1950년 1월 21일 별세했다.
'동물농장'의 작가 조지 오웰이 1950년 1월 21일 별세했다.

조지 오웰(George Orwellㆍ본명 Eric Arthur Blair)이 1950년 1월 21일, 47세로 별세했다. 그는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버금가는 많은 한국어 번역본이 나온 ‘동물농장’의 작가다. 45년 출간된 ‘동물농장’은 미군정 해외정보국의 지원으로 외국어로는 48년 처음 한국어판으로 소개됐다. 미군정은 스탈린 치하의 소련 현실을 우화적으로 풍자한 그 책을 일종의 공산주의 백신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한국전쟁 이후 60,70년대 반공 포스터에 돼지가 포악한 ‘빨갱이’의 상징으로 툭하면 불려 나온 것은 그의 책 영향이 컸다. 근년 SNS 등서 나쁜 이미지의 ‘돼지’가 등장하는 건 북한 지도자의 체형이 동물농장과 연상작용을 일으킨 탓일 테다.

오웰이 반공투사가 아니라 무정부주의 성향의 사회주의자라는 사실, 동물농장의 독재자 ‘나폴레옹’으로 소비에트의 스탈린을 겨냥한 건 맞지만 더 깊이 인간의 탐욕과 현실 (자본주의ㆍ공산주의)체제의 비인간성을 우화와 은유 속에 담으려 했다는 사실을 한국 독자들이 깨닫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이후부터일 것이다. ‘동물농장’에서 오웰이 “모든 동물은 평등하지만 어떤 동물은 더 평등하다”고 하거나 “네 다리는 선하고 두 다리는 악하다(…) 선량한 인간이란 숨진 인간 뿐”이라고 쓸 때 그가 상정한 ‘더 평등한 동물’이 스탈린만은 아니었다.

오웰은 영국 식민지 인도 벵골의 하급 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장학생으로 명문 사립 이튼스쿨에 진학하지만 성적은 바닥권이었다. 경제적으로도 그는 어려웠다. 대다수 이튼 졸업생들이 옥스퍼드나 캠브리지로 진학할 때 그는 인도 제국경찰시험을 치러 미얀마(버마) 주재 관료가 됐다. 선량한 제국주의자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허망한 꿈인지를 그는 훗날 ‘버마 시절’과 ‘나는 왜 쓰는가’에서 통렬히 밝혔다. 5년 만에 사표를 쓴 그는 프랑스와 영국을 떠돌며 하층민의 생활을 시작한다. 접시닦이, 일용직 노동자, 부랑자, 노숙자….

그가 쓴 평론을 제외한 거의 모든 글은 체험에 근거해 쓰여졌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북부 탄광노동자들의 생활과 자본주의 지역 수탈의 구조를 다룬 르포 ‘위건 부두 가는 길’이 대표적이다. 또 하나의 걸작 ‘카탈루냐 찬가’는 1936년 스페인 내전 체험 기록이다. 그는 인민정부를 돕는 좌파 민병대로 참전, 카탈루냐 공화파 군대가 지독한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도 끝내 지켜나갔던 선의와 평등의 기품에서 인간의 희망을 보았고, 코민테른 국제여단과 소비에트의 허상을 목격했다. ‘동물 농장’과 ‘1984’는 그 뒤에 쓰여진 거였다.

그는 역사적ㆍ정치적 의무감과 미학적 열정으로 글을 썼다고 했다. ‘위건 부두…’ 전까지는 물론 먹고 살기 위해 써야만 했을 것이다. 자본과 이념의 난폭함을 몸으로 겪고 글로 고발하면서 냉소와 허무의 유혹으로부터 저 의무감과 열정을 지켜낸 힘은, 그의 거의 모든 작품 속에 스며 있는 해학이었을 것이다. 그 해학이 지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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