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둔 야당, 중도화 보수화
사회 문제 해소에는 진보도 필요
기회를 만드는 것도 진보의 책임
진보 인사들이 집단으로 정치권에 들어간 최초의 사례는 평민련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민당을 따로 만들어 1987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가 패한 뒤 당을 추스르기 위해 영입한 재야 인사 그룹이다. 문동환 목사, 박영숙 전 여성단체연합 부회장, 그리고 아직 국회의원을 하고 있는 이해찬 전 국무총리 등이 그 멤버다. 집단으로든, 개인으로든 진보 인사의 야당 진입이 활발해진 것은 평민련 이후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민자당도 1990년대 중반에 이재오, 김문수 같은 진보 인사를 받아들였다. 이들은 억압적 정권과 싸운 희생정신의 소유자로 개혁성, 참신성, 상품성을 두루 갖춘 것으로 여겨져 당시 민자당에 도움이 됐다.
4ㆍ13 총선을 세 달 정도 앞두고 정치권의 영입경쟁이 한창이다. 그러나 과거처럼 진보 성향 인사의 입당은 거의 없다. 더불어민주당이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한 김종인이나, 국민의당 공동창당준비위원장인 윤여준과 한상진 모두 쓴 소리를 잘 하기는 해도 보수파로 분류된다. 더민주당과 국민의당 양쪽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는 정운찬 전 국무총리 역시 동반성장의 기수이기는 하나 보수파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외부 인사 영입의 백미라는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자신을 보수라고 소개한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에서 2,200억원 자산가가 된 김병관 웹젠 의장이나, 고등학교를 나오고도 국내 최대 기업의 임원이 된 양향자 전 삼성전자 상무는 감동 신화는 썼지만 정치 지향은 발휘할 기회가 없었다.
야권의 또 다른 축으로 떠오른 국민의당은 처음부터 중도를 표방했다. 국민의당을 이끄는 안철수 의원이나, 김영환 임내현 의원 등이 더민주를 탈당해 국민의당에 합류할 때 밝힌 각오에도 강경주의를 배격한다는 중도 선언이 포함돼 있다. 국민의당은 중도에 머물지 않고 그 오른쪽도 노리고 있다. 김봉수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이나 정용화 호남미래연대 이사장 같은 이명박 인맥을 영입한 것이나 한상진 위원장이 이승만 전 대통령을 국부라고 칭한 것 등은 보수파를 염두에 둔 행동이다.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등 진보 정당들이 엄청난 선전을 하지 않는 한, 총선 국면의 정치판은 이제 중도 내지 보수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돌려 말하면 정치권의 진보세력은 위기를 맞게 됐다. 유력 야당의 중도화 또는 보수화가 선거를 앞둔 일시적 득표 전략이라고 봐도 되겠지만 선거 이후에도 그렇게 흘러갈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정치권의 중도화 또는 보수화가 한국 사회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사회가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데 도움이 되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불평등 해소, 복지 확대, 경제민주화 실현 같은 중대한 사회경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시점에 있다. ‘흙수저’와 ‘헬조선’을 외치는 젊은이들의 절규 또한 귓가에 맴돈다.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킨 그 복합한 문제를 중도와 보수만으로 풀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자만이거나 무지다. 진보가 하지 못하는 일을 보수가 할 수 있고 보수가 하지 못하는 일을 진보가 할 수 있다면 보수든, 진보든, 중도든 다 같이 머리를 맞댈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정치권이 중도와 보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지금이 진보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자면 진보만의 비전, 진보만의 생각을 제시해 국민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것을 위해 치열하게 학습하고 호소력 있는 설득 능력을 갖춰야 한다. 강준만 교수의 ‘싸가지 없는 진보’나 안철수 의원의 ‘낡은 진보’ 같은 비판론은 진보 그 자체를 나무란 것이 아니다. 도덕적 우월감과 독선에 빠져 자기 성찰을 등한시하고 다른 생각에는 귀를 막아 결국에는 국민의 선택도 받지 못하게 된 진보 진영의 자폐적 문화를 지적한 것이다. 호남 근본주의자의 편향된 추궁이라고, 더민주 탈당의 의도된 핑계거리라고만 넘길 것은 아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수레는 바퀴가 둘 있을 때 더 잘 굴러간다. 그런 점에서라도 진보의 가치는 중요하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은 진보의 능력이다.
/박광희 논설위원 kh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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