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조정 강요 ㆍ변론권 침해 등
법원은 여론조사 치부 모르쇠 일관
하위 꼽힌 부장판사 올핸 최하위
“일본선 인사평가에 반영제도 시행”

서울고법 A 부장판사는 지난해 법정에서 “항소 이유를 1분씩만 말하라”고 주문했다. 할당시간이 지나자마자 A 판사는 “다음 사건을 진행하겠다”며 양쪽 변호인들을 당황하게 했다. 또 갑자기 판례 번호를 불러주고는 “이 판례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오라”고 시키는 등 고압적으로 재판을 이끌었다. 당사자들이 반대해도 무리하게 조정(합의)을 유도하거나 증거신청을 철회하도록 요구한 뒤 패소 판결을 했다. 서울에서 활동 중인 변호사들이 “변론권을 심각하게 침해당했다”며 뽑은 ‘불량 판사’의 대표 사례다.
판사들의 잇따른 막말은 올해도 확인됐다. 서울변호사회가 20일 내놓은 ‘2015년 법관평가’결과를 보면, A 부장판사를 비롯한 하위 법관(100점 중 50점 미만)은 모두 18명이다. 지난 1년간 서울의 변호사 1,452명이 제출한 약 8,400건의 평가서를 모은 결과다. 이들에 따르면, 가사 사건을 맡은 판사는 이혼소송의 여성 당사자에게 “부잣집에 시집 가서 누릴 것 다 누리고 살지 않았느냐, 도대체 얼마를 더 원하느냐”며 폭언하며 조정을 강요했다.
음주운전 사건에서 검사가 집행유예를 구형하자 “수사검사가 (피고인과) 서로 아는 사이냐. 친구 아니냐. 왜 이렇게 봐줘”라며 반발조로 묻는 판사도 있었다. 이 판사는 피고인에게 “대표 자격이 없다. 한심하다, 한심해”라거나 “(사건이) 무슨 3류 드라마 같아 실체적 진실을 찾을 가치가 전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피고인이 피해자를 위해 5,000만원을 공탁하자 “그러면 형을 깎아줄 줄 아느냐”고 비꼰 판사 사례도 나왔다. 변호사의 변론에 대해 “그래서? 그게 뭐?”라고 비아냥댄 판사도 소개됐다. 다만, 이 같은 하위법관의 비율은 3.24%로 지난해(4.58%)보다 떨어졌다.
변호사들은 2008년 이래 8년째 이 같은 법관평가를 내놓고 있지만 판사들이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사법부가 평가 결과를 ‘여론조사’ 정도로 치부하고 모르쇠로 일관한 탓이다. A 부장판사는 과거에도 유사 사유로 하위법관에 꼽힌 데 이어 올해는 ‘최하위 법관’(22점)에 선정됐다. 하급심(1ㆍ2심) 재판장이 부적절하게 재판을 진행하면 양승태 대법원장이 강조해온 ‘사실심 충실화’가 상당히 저해되는데도 법원행정처는 올해도 “공식 입장은 없다”고만 답했다. 재판에 진 변호사들이 앙심을 품고 법관에 혹평을 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각자 사건을 취급한 변호사 5명 이상이 공통된 평가를 내린 사례만 발표되는 것을 이렇듯 안이하게 받아들이는 게 옳으냐는 법원 밖 목소리도 크다. 김한규 서울변회장은 “무슨 피드백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냐”며 “일본은 이미 이런 평가를 법원인사권자가 반드시 고려하도록 하는 법관인사평가 반영제도를 시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우수법관(95점 이상)으로는 허익수 서울가정법원 판사, 정형식 서울고법 부장판사, 여운국 서울고법 판사, 임선지 광주지법 목포지원 부장판사, 손주철 춘천지법 원주지원 부장판사, 송미경 서울중앙지법 판사, 김관용 서울고법 판사, 임정택 서울중앙지법 판사 등 8명이 선정됐다.
손현성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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