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표절과 문학권력 논란이 창비에게 큰 시련이었다. 창비가 한국 문학을 얼마나 챙겼느냐에 대해선 반성할 점이 많다.”
계간 ‘창작과비평’ 새 편집주간을 맡은 한기욱 인제대 영문과 교수는 20일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열린 ‘창작과비평 창간 50주년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신경숙 표절 사태로 문단 안팎에서 적잖은 비판을 받았던 창비가 50주년을 맞아 편집진을 새로 짜고 적극적인 변화를 선언하고 나섰다. 지난해 말 물러난 백낙청 편집인의 후임에는 강일우 창비 대표이사가 임명됐고, 신임주간은 한기욱 교수가 부주간은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가 선임됐다. 강 대표는 “주간은 문학과 비평 분야를, 부주간은 인문사회 분야를 책임질 것”이라며 “나는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경제적 후원 외에 편집에 일절 간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한국문학 소홀” 반성 문학 비중 확대
계간 창작과비평 개편의 골자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정론지와 문예지라는 두 정체성 중 문예지의 성격을 강화한다. ‘창작과비평’과 완전히 독립된 젊은 문예지 창간도 같은 맥락이다. 새 비상임 편집위원으로 한영인(문학평론가) 김태우(서울대 HK연구교수, 한국사학자)씨가 합류한다.
문예지 성격 강화의 필요성은 지난해 6월 신경숙 표절 사태 때 불거졌다. 창비가 신씨의 표절 의혹을 부인하고 작가를 옹호한 것에 대해 ‘창비의 문학적 노선(민중문학)과 맞지도 않는 작가를 무작정 감싸는 것이 상업주의 때문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고, 이는 위축된 한국 문학 대신 인문서와 팔리는 책에만 주력해왔다는 원성으로 이어졌다.
한 주간은 “창작 분야를 증면하고 비평담론을 활성화시켜 한국 문학 활성화에 기여하되, 특히 사회 현안과 민중의 삶에 열려 있는 문학을 발굴하고 지지하는 데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또 “최근 문을 연 서울 사옥도 작가들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시도”라고 덧붙였다. 2006년 파주로 사옥을 이전한 창비는 지난해 말 마포구 서교동에 서울 사옥을 새로 열었다.
젊은 문예지 창간, 스마트폰 ‘詩 앱’ 제작
젊은 문예지 창간은 정론지라는 창작과비평의 오랜 지향이 젊은 작가들의 작품 활동을 담아내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한 이원화 전략이다. 한 주간은 “발랄하되 시대현실과 삶의 현장에 깊은 관심을 가진 작가들이 마음껏 끼를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다”며 “편집권은 새로 구성하는 4, 5인의 젊은 작가들에게 완전히 위임하고 창비는 재정적 지원과 편집실무만 맡을 것”이라고 말했다. 잡지는 시, 소설, 평론뿐 아니라 산문, 르포, 만화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른다. 올해 하반기 나올 예정이다.
강 대표는 “최근 문학의 위기란 말이 많이 나오지만 우리는 문학의 중요성은 변함이 없으며 시장 전망도 밝다고 본다”며 “올 봄 창비시선 400권 돌파를 기념해 스마트폰에서 시를 볼 수 있는 ‘시 앱’도 기획ㆍ제작 중”이라고 귀띔했다.
50주년 특집 ‘한국의 보수세력’ 연속기획
인문사회 분야에서도 변화를 시도한다. 기존의 ‘논단과 현장’을 분리해 ‘논단’에서는 주요 사회 담론과 학술 쟁점을 발굴하고 토론하는 논문을, ‘현장’에서는 사회 현안을 제기하고 삶의 현장을 짚는 시의성 높은 글들을 실을 계획이다.
아울러 한반도와 동아시아 세계를 조망하는 기획물도 마련한다. 그 첫 시도로 2월 중 나올 50주년 기념호에 연속기획 ‘한국의 보수세력을 진단한다’와 ‘소수자의 눈으로 한국 사회를 본다’를 싣는다. 보수세력으로 주목하는 첫 대상은 기독교다. 이 부주간은 “보수세력을 무작정 비난하기보다 이해를 바탕으로 한 제대로 된 비판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마련한 기획”이라며 “대담 형식으로 한국 보수세력의 역사, 구조, 성격을 면밀하게 논할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재벌, 종편, 보수 진영의 사회운동 등도 다룰 예정이다.
소수자 이슈는 지금껏 거대 담론에 치중하느라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개별성, 개체성에 더 관심을 두겠다는 취지다. 이 부주간은 “창비 부설 세교연구소에서 장애인이나 성소수자 문제를 다루지 않은 건 아니지만 거대 담론에 비해 양적으로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며 “단발성 기획으로 끝내지 않겠다”고 말했다.
온ㆍ오프라인 대중강좌 ‘창비학당’ 설립
대중을 상대로 한 인문사회 교육기관 ‘창비학당’도 설립한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와 석학들이 문학ㆍ인문ㆍ예술 강좌를 진행, 대중과의 접점을 넓히고 출판과 교육의 선순환 체계를 갖추는 것이 목표다. 이달 중 별도 법인 설립을 마치고 2월에 개강한다. 분기별로 10여 개 강좌가 진행되며, 오프라인 강좌는 서울 사옥에서 진행하고, 온라인으로는 7월부터 볼 수 있다.
이밖에 6월 20~21일 ‘동아시아에서 ‘대전환’을 묻다’(가제)를 주제로 5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하고, 연중 전국 주요 5개 도시를 순회하는 문학 행사 등도 마련한다. 출판사 창비는 ‘창비 50년사’, ‘한국현대생활문화사’(전4권), ‘한국-주변국 관계사’,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서울 편’ 등의 단행본을 준비 중이다. 강 대표는 “한결 같되 날로 새로워진다는 마음가짐으로 또 다른 50주년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창간 50주년 축하모임은 2월 24일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연다.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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