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니 뭐니 해도 올해 최대의 관심사는 ‘국민행복’도 ‘통일대박’도 아닌 국회의원 총선거다. 4월 13일로 예정돼 있다. 이 선거는 내년 12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의 풍향계 역할을 할 것이다. 헌법 개정 얘기도 나오고 있다. 현행 1987년 헌법은 주권재민이라는 권력 원천과 삼권분립이라는 권력의 운영원리를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력과 여론의 괴리는 크고 그 사이 경제권력은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졌다. 대한민국은 어떤 정치체제인가, 또 어디로 갈 것인가. 그분을 초청하는 이유다.
기원전 4세기, 한반도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았던 그 분은 거의 모든 학문의 아버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의 주 전공은 정치학이다. 스승인 플라톤의 관념론적 이상정치를 현실에 구현하려 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여러 정치체제를 검토하며 최적의 모델을 탐구했다. 그가 살핀 정치체제 모델은 왕정, 귀족정, 민주정이었다. 그는 각 정치체제의 특징을 살피면서 타락할 경우에도 유의했다. 대통령 중심제의 효율성에도 불구하고 제왕적 대통령제란 오랜 비판은 대통령제의 타락상을 말해준다. 그런데 대통령이 거리로 나선 것은 민주적 견제가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 반작용으로서 중우정치의 징후를 동시에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권력의 정자에 모여 공모와 갈등을 일삼던 정치권은 선거의 계절을 앞두고 분열의 소용돌이에 넘실거린다. 그러나 권력자의 이익보다, 부자의 이익보다 더 위험한 것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대부분인 대중의 이익을 명분으로 하는 민주정이 크게 약화된 현실이다. 선거제도와 정치담론을 포함한 현 정치지형에서 민주공화국이 민주정을 뿌리 내릴 기회구조는 크게 제약돼 있다. 그분은 귀족정치를 이상적인 정치형태로 간주했지만 동시에 현실주의자였다. 귀족정치의 이상보다 타락의 가능성이 높아 보였던 것이다. 물론 엘리트주의적 시각 때문에 그가 민주정을 전폭 지지하지는 않았다. 풍요로운 오만과 가난한 비굴 사이에서 ‘중용’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래서 그는 현실에서 가장 적합한 정치체제를 혼합정으로 보았다. 정치 목표는 튼튼한 중산층의 형성을 통한 사회 안정이었다. 그분을 한국에 초청하는 또 다른 이유다.
중용에 기반한 그의 혼합정 모델은 정치 지도자의 리더십을 기반으로 한다. 우리 헌법은 민주주의 이념과 대통령제를 골간으로 하고 있지만 현실정치의 운영 시스템은 혼합정의 성격도 갖고 있다. 대통령의 통합, 타협, 모범의 리더십이 헌정을 구현하는 근간이 된다. 통치자가 특정 정치적 성향과 이해를 갖고 여론을 나누거나 끌어 모으는 행태는 이상적인 혼합정인가, 아니면 그 타락상인가. 그러면 중용의 정치적 구현으로서 사회 안정, 그 기반으로서 중산층은 어떤가.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셉 스티글리츠를 비롯한 많은 경제학자들은 목하 열악한 경제상황의 극복과 사회 안정을 위해 수요 창출과 그를 통한 중산층의 재건을 제안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경제활성화법’의 입법을 위한 서명운동에 직접 참여하고 그 확산을 지지하였다. 그것이 중우정치라는 비판을 피하려면 박 대통령은 손쉬운 해고의 칼바람에 휘청거리는 노동자들과 어이 없는 ‘합의’에 존엄을 또 한번 무시당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도 손을 내밀어야 할 것이다. 거기에 장래 중산층이 될 수 있는 청년들이 현실정치로부터 기만 당하고 미래를 거부당하고 역사의 진실 지키기를 억압당하는 일을 그분은 어떻게 볼까.
물론 그분의 약점을 통해서도 우리는 교훈을 찾을 수 있다. 인류 최초의 정치학 저작인 ‘정치학’에서 그는 노예와 여성을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그의 정치학은 제왕학에 가까웠다. 작은 폴리스에서 정치 이상을 구현하려 한 그의 구상은 그리스의 제국주의적 팽창으로 왜소화됐다. 그렇다면 민주 정체와 인권 존중을 표방하는 대한민국 헌정과 그 수호자인 통치자가 그분을 여유 있게 대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영원한 패권을 추구하는 빅 브라더와 종속적인 동맹을 유지하는 건 자립적인 폴리스 정치의 불가피한 대안이라고 말하면서.
서보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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