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오한이 들고 정신이 멍해져서 병원을 찾았다. 웬만한 감기 정도는 종합감기약 몇 봉 털어 넣고 견디는 나로선 드문 일. 온몸이 투명해져서 바람이 아무 저항 없이 지나다니는 느낌이었다. 체온을 재니 39도에 육박했다. 특별히 아프다는 자각이 없었던 게 신기했다. 그러다 몸 상태를 확인하고부터는 제대로 맛이 가기 시작해서 결국 입원. 주사를 몇 대 맞고 침상에 드러누워 버렸다. 과로하거나 음주가 잦았던 건 아니다. 지난 한 두 달 마음 써야 할 일이 많아 잠을 잘 못 자고 흡연이 잦았던 게 원인인 듯. 비유컨대, 잔뜩 압이 올랐던 풍선이 터져버린 느낌이랄까. 말 그대로 바람 빠진 풍선 모양으로 누워있자니 돌연 또렷해지는 것들이 있다. 한동안의 말이나 행동들이 편집 끝난 영화 장면들처럼 병실 천장에 홀연히 재생된다. 분명 내가 한 것들인데, 기운 다 빼고 되새겨보니 그 사람이 과연 내가 맞았나 싶기도 하다. 실수와 오해, 반성과 자각의 좁은 굴레 속에서 답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모습들이 대부분. 그렇게 스스로 내상을 키우고 억압하다가 그게 결국 바이러스를 불러들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은 늘 정직하다. 내가 나를 오해하고 돌보지 않을 때, 스스로 상처를 내 돌봐 달라 신호를 보내는 법. 그래서 고집부리지 않고 며칠 누워 있기로 했다. 낯선 병실 하얀 옷. 이 병원을 영혼의 세탁소라 짐짓 명명해본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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