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46) 감독이 이끄는 23세 이하(U-23) 축구대표팀이 출범할 당시 선수구성을 놓고 일각에서는 역대 올림픽대표팀을 통틀어 최약체라는 우려가 제기됐던 게 사실이다.
뚜껑이 열리자 신태용호는 이를 비웃듯 우승전력을 과시하며 우즈베키스탄·이라크 등이 버텨 만만찮은 조별리그를 2승1무(골득실 +6)의 호성적으로 뚫어냈다. 우즈벡(2-1 승)과 예멘(5-0 승)을 잇달아 물리치고 일찌감치 8강 진출을 확정지은 신태용호는 20일(한국시간) '디펜딩챔피언' 이라크와도 1-1로 비기며 이라크에 골득실에서 +3 앞선 조 1위로 8강에 안착했다.
다 잡았던 이라크전을 경기 막판 집중력 저하(후반 47분 동점골 허용)로 놓친 게 옥에 티였을 뿐 신태용호가 이라크전을 통해 보여준 가능성은 기대한 것 이상이었다.
◇발군의 경기력 보인 '장신 공격수'
가장 큰 수확은 선제 헤딩골을 넣은 김현(23·제주)의 재발견이다. 신태용 감독은 이날 '신성' 황희찬(20·잘츠부르크)에게 밀려 그동안 벤치를 지켰던 김현을 원톱으로 한 4-2-3-1 전술을 들고 나왔고 이에 화답하듯 김현은 전반 22분 왼쪽 코너킥 상황에서 이창민(22·전남)이 올린 크로스를 골문 앞에서 뒤로 살짝 빠지며 머리를 갖다 대는 기술적인 헤딩슛으로 이라크의 골문을 열었다.
단순히 골만 넣었던 게 아니다. 김현은 최전방 공격수로 여러 차례 위협적인 면모를 과시하며 존재감을 확실히 입증했다.
189cm의 장신 공격수답게 최대 장기인 헤딩슛은 몇 번이나 이라크 수비진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압도적인 제공권으로 동료들의 찬스를 만들어주는 플레이는 더욱 발군이었다. 안정환 MBC 축구 해설위원은 "공중에서 머리로 주변 동료들에게 공을 떨궈주는 플레이야말로 신태용 감독이 김현에게 원하는 장면"이라고 강조했다.
큰 키로만 축구를 하는 선수가 아니라는 걸 증명했다는 점에서도 이날 김현의 경기력은 칭찬받아 마땅했다.
후반 들어 신태용 감독이 기존의 권창훈(22·수원) 등을 투입하며 공격진의 전술변화를 꾀하자 김현의 움직임은 보다 활발해졌다. 행동반경이 공격 2선 및 좌우로 넓게 펼쳐지며 '골 도우미'로서 역할을 본격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살아난 김현이 몰고 올 대표팀의 변화
후반 김현의 발에서 노마크 찬스를 비롯해 두 차례 정도 결정적인 어시스트가 연출됐는데 아쉽게도 동료들이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 이때 추가골이 터졌다면 경기결과는 완전히 달라졌을 터라 아쉬움을 남겼다. 김현 개인적으로도 인상적인 선제골에 쐐기 도움이 더해졌을 뻔했다. 그간 마음고생을 털어내듯 '김현의 김현에 의한 김현을 위한' 이라크전으로 기억될 수 있었다는 뜻이다.
뒤늦게나마 컨디션을 되찾고 쾌조의 경기감각을 펼쳐 보인 김현의 재발견은 8강 토너먼트 문턱에 들어선 신태용호가 위협적인 공격옵션을 추가했다는 데 큰 의미를 부여할 만했다.
당초 신태용호의 최전방 공격수로 첫손에 꼽혔던 김현은 지난해 3월27일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예선 1차전 브루나이전에서 1골을 넣은 후 약 10개월 만에 골 맛을 봤다.
남은 기간 저돌적인 황희찬과 자신감을 찾은 김현 간에 펼쳐질 선의의 경쟁이 대표팀에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무엇보다 변화무쌍한 신태용 감독의 전술운용에 날개를 다는 격이 될 수 있어 주목된다.
안정환 해설위원은 "김현이 살아나면서 앞으로 신태용호는 맞춤형 전술이 가능해졌다"며 "비겼지만 평가전에서 안 좋았던 선수들의 기량이 예선을 거치며 올라왔다는 걸 확인했다. 특히 김현의 경기력이 회복됐다는 건 큰 수확"이라고 더 강력해질 올림픽대표팀을 예고했다.
사진=김현. /연합뉴스
정재호 기자 kemp@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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