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예쁘기로 유명한 네덜란드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는 유독 해외 공연에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징크스로 유명하다. 이유가 재미있는데 그들의 전용 공연장인 로열 콘세르트허바우의 음향이 ‘너무 좋기 때문에’ 역으로 홈그라운드 연주가 기량 이상의 평가를 받는다는 속설이 있다. 명기를 제대로 울려 소리가 뻗어나가게 하는 콘서트홀이 ‘제2의 악기’로 불리는 이유다.
리모델링한 대구시민회관(2013), 통영 국제음악당(2014), 롯데 클래식홀(2016) 등 클래식 전용홀이 속속 문을 열면서 이제 우리에게도 ‘클래식 공연=예술의전당’ 공식에서 벗어나 어떤 공연장이 소리를 제대로 울리는지, 어떤 공연장이 음악보다 소음을 더 잘 전달하는지 비교우위를 논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국내 건축음향전문가들에게 좋은 공연장의 조건과 같은 가격으로 좋은 좌석 고르는 법을 물었다.
마이크를 쓰지 않고 자연 울림을 그대로 쓰는 클래식 공연장의 음질을 논할 때 전문가들은 첫 번째 대명제로‘충분한 적막(寂寞)’을 꼽는다. 충분한 음량을 확보하고, 작은 소리와 낮은 음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우선 소음이 적어야 한다는 것. 주파수별로 소음 정도를 나눠 계산한‘NC(노이즈 크리테리아)지수’를 공연장 소음 기준으로 삼는데 교회나 학교가 NC25~30, 도서관 영화관이 NC30~35 정도다.
김남돈 ㈜삼선엔지니어링 대표는 “유럽의 경우 NC15 이하를 좋은 공연장으로 보는데 이 기준에 드는 국내 공연장은 인천아트센터, 삼성전자 인재개발원 콘서트홀, 지금 짓고 있는 롯데콘서트홀 정도”라고 말했다. 천장에 냉난방기기가 달려있어 이 공연장들보다 공조소음이 좀더 발생하는 예술의전당의 소음지수는 NC20 내외다.
두 번째 대명제는 적절한 잔향감이다. 공연장에서 연주 소리가 아름답게 들리는 건 악기에서 나온 음이 벽에 몇 번이고 반사돼 연주 후에도 실내에 남아 울리는 소리, 즉 잔향 때문이다. 반면 잔향이 너무 오래 지속되면 음과 음이 섞여 소리 명료도가 떨어진다. 유일선 OSD컨설팅 이사는 “음악 장르와 공연장 크기에 따라 적절한 잔향시간이 다른데 종교 음악의 최적 잔향시간이 3초로 가장 길고 오케스트라 협연이 2~2.2초, 실내악은 1.3~1.6초”라고 말했다. 음량이 클수록 잔향 시간이 같더라도 잔향감이 커지며 잘 울리는 효과가 있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의 잔향은 2초, IBK챔버홀은 1.5초로 웬만한 유럽의 콘서트홀에 뒤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국내 콘서트홀의 음향이 2% 부족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최근 새롭게 뜨는 좋은 연주홀 기준은 ‘음악으로부터 둘러 쌓인 느낌’ 즉 공간감이 풍부한 것인데, 저음이 잘 들릴수록 공간감이 좋다. 김남돈 대표는 “주파수 500Hz 이상 중고음역대 대비 500Hz 미만 저음역대 소리 비율을 일컫는 저음비가 1이상일 때 음악의 온기가 한층 높아진다”며 “로열콘세르트허바우를 비롯해 빈 무지크페어아인잘, 미국 보스턴 심포니홀 등 음향 전문가들이 꼽는 3대 연주홀 모두 저음비 수치가 높다”고 설명했다. 비결은 당시 실내 마감 재료로 석고를 써서 면밀도가 높아 충격음을 잘 잡고 저음비도 높기 때문이다. 롯데콘서트홀의 음향 자문을 맡은 일본 나가타음향설계의 도요타 야스히사(豊田泰久) 로스앤젤레스사무소 대표는 공연장 면밀도를 천장 기준 100kg/㎡로 제안하는데 국내 대부분 공연장은 20~30kg/㎡, 고양 아람누리홀과 IBK챔버홀도 50~60kg/㎡에 불과하다.
공연장 형태와 음질의 상관관계는 전문가마다 의견이 갈린다. 김남돈 대표와 유일선 이사는“직사각형 형태의 슈박스홀이 반사음이 풍부해 음향적으로 좋다”고 입을 모았다. ‘3대 홀’을 비롯해 국내 음향 좋은 연주홀로 꼽히는 고양아람누리홀과 삼성전자 콘서트홀, 대구 시민회관이 모두 슈박스 형태다. 반면 문성욱 예술의전당 음악부 음향감독은 “반사판 설치 등 현대 기술로는 반사음을 충분히 조절할 수 있어 부채꼴형과 빈야드형의 반사음이 더 적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슈박스 형태가 반사음을 이용하기는 가장 쉽지만 객석이 적다는 한계가 있다. 부채꼴형은 사석이 거의 발생하지 않고 음이 방사형으로 퍼져 연주 집중도가 높고, 빈야드형은 무대와 객석 거리가 적다는 장점을 각각 갖고 있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부채꼴형으로 빈야드형의 롯데콘서트홀이 문을 열면 국내 모든 형태의 연주홀이 다 들어서게 된다.
명기도 계속 연주해야 제 소리를 유지하듯, 연주홀 역시 최상의 음질을 뽑아내 줄 상주 연주단체가 있어야 한다. 이달 말 내한하는 미국 시카고심포니는 스테이지의 폭이 좁은 심포니 센터홀에 맞춰 천장을 향해 음을 울리는 연주 습관이 지금의 화려한 ‘시카고 사운드’를 만들었고 전세계를 순회 공연하며 이 사운드와 연주홀을 알리고 있다. 대구 시민회관 리모델링 개관 후 상주연주단체인 대구시향의 기량이 수직상승하며 시너지효과를 내는 것도 좋은 사례다.
소리 듣기 가장 좋은 좌석은 어디일까? 김남돈 대표는 “음악 전공자들 사이에서도 선호하는 소리가 다 다를 정도로 심리가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기계적인 수치로만 평가하긴 힘들다”면서도 “소리 감상을 기준으로 한다면 정중앙과 벽을 피한 중간 자리가 가장 좋다”고 말했다. 정중앙은 소리 확산감이 적고, 벽과 가까운 자리는 반사음의 지연시간이 짧아 음색이 변하는 현상이 생긴다. 음향 상태가 가장 나쁜 자리는 발코니 밑 부분이다. 천정이나 벽의 반사음을 이용할 없어 음량이 적은데다 잔향시간도 짧고 확산음도 적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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