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정유사, 노스다코타산 중질유 가격 -0.15달러로 책정… 원유 가치 운반비 밑으로 떨어지자 떨이 고육책
유로존 마이너스 금리 이어 ‘손해 보는 장사’ 보편화 시대
장기 저성장ㆍ저금리에 저유가 충격까지 덮친 글로벌 경제에 지금까지는 상상조차 어려웠던 기현상이 속출하고 있다. 이자를 내고 예금을 맡기는 유로존의 ‘마이너스 금리’가 충격을 안긴 데 이어, 이번엔 돈을 받아야 기름을 사겠다는 ‘마이너스 유가’까지 등장했다.
19일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미국의 정유사 ‘플린트힐스 리소시스’는 최근 유황이 다량 함유된 저품질 원유(노스다코타산 중질유) 생산업자들에게 구매가격을 배럴당 -0.5 달러로 책정해 웹사이트에 게시했다. 이는 원유를 정제회사에 팔려면 오히려 0.5달러씩을 내라는 의미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배럴당 47.6달러에 노스다코타산 중질유를 팔았던 생산업자들에겐 사망선고나 다름없는 조치다.
이런 기현상이 벌어진 건, 국제유가 급락으로 갈수록 제품단가가 낮아지는 상황에서 저품질 원유 운반에까지 송유관을 내 줄 여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원유 가격은 품질과 정제회사로의 운반비용으로 매겨지는데, 송유관 사용이 막힌 생산업자들이 트럭ㆍ기차 같은 비싼 운송수단으로 실어 나르는 원유는 더 이상 사지 않겠다고 나선 것이다. 현지 정유업계 관계자는 “마이너스 유가는 결국 유정 폐쇄를 결단케 하는 인센티브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플린트힐스 리소시스의 구매 가격표는 다른 정제회사들의 기준 가격이 될 만큼 영향력이 커 최근 경쟁업체들도 다른 중질유 가격들을 잇따라 대폭 내리고 있다고 블룸버그 통신은 전했다.
세계 경제에서 마이너스 가격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수년 전부터 디플레이션과 싸우고 있는 유로존에선 이미 마이너스 금리가 보편화됐다. 유럽중앙은행(ECB)은 2014년 9월 처음 은행간 예금금리를 마이너스로 낮춘 데 이어 지난달엔 -0.2%에서 -0.3%으로 한 단계 더 내리기까지 했다. 돈을 맡기는 데 비용을 지불하게 만들어서까지 시중에 경기회복을 위한 돈을 풀겠다는 극단적인 선택이다.
이성택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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