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ㆍ하의 10개 겹쳐 입고 행사 도우미
몸 둔해져 외투도 못 입는 손세차 등
“눈물ㆍ콧물 흘리며 감기 달고 살아
경기 한파로 장사 안 돼 마음도 추워”
다음주 중반까지 한파 소식에 한숨만
화장품 로드숍 행사 도우미 3년 차인 전진(34ㆍ여)씨는 추위를 이기는 법에 있어서는 전문가로 자부한다. 19일 서울 명동의 한 로드숍 피켓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전씨는 아침부터 채비를 단단히 했다. 이날 전국에 몰아친 한파를 이겨내기 위해서다. 장갑 2개와 양말 3개는 기본이고, 상ㆍ하의 총 10개를 겹쳐 입었다.
하지만 이날 추위는 유난히 혹독했다. 얼굴만 겨우 내놓은 전씨는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눈물과 콧물이 흐른다”며 연신 눈가와 코밑을 훔쳤다. 뜨끈한 국밥 한 그릇으로 몸을 녹이고 싶은 생각도 굴뚝같지만 점심 식사는 어림도 없었다. 오전ㆍ오후 타임을 합쳐 10시간 아르바이트를 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씨는 “점심 시간이 따로 없어서 초코바로 몸에 열을 낸다”고 말했다.
이날 서울의 최저 체감온도는 영하 19도. 햇볕이 쨍쨍한 대낮에도 명동거리의 체감 온도는 올라갈 줄 몰랐다. 골목으로 들어갈수록 추위는 더 매서웠다. 건물에 가려 볕이 제대로 들지 않는 데다가, 칼바람이 세차게 지나가는 길목이기 때문이다.
썰렁한 명동 거리를 외국인 관광객들이 채웠지만 목적지를 향해 발길을 재촉하는 이가 대부분이었다. 극한 추위를 참으며 한 푼이라도 더 벌겠다는 ‘알바생’들이 건네는 전단지나 무료 화장품 샘플도 외면하기 일쑤다. 게다가 한파는 다음주 중반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거리에서 겨울을 나는 알바생들에게는 잔혹한 소식이다.
명동거리에서 아이스크림을 판매하는 민영훈(39)씨는 오전 9시부터 낮 12시까지 단 한 명의 손님도 받지 못했다. A4 2장 크기 전기난로에 언 손을 녹이며 기다리는 일이 전부였다. 민씨는 “여름에는 손님이 하루에 1,000명 정도 왔다면 겨울은 100명도 안 된다고 보면 된다”면서도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겨울이 지나야 봄이 오지 않겠냐”고 말했다.
명동 상권 건너편 소공동 롯데백화점 주차장 도우미도 겨울철 극한 알바 중 하나다. 그 중에서도 바람이 오가는 지상 2층 주차장은 도우미들 사이에서도 가장 버티기 힘든 곳으로 꼽힌다. 정명경(19ㆍ여)씨는 “바람이 돌아 부는 자리라 귀가 얼얼할 정도다. 여기 있으면 감기를 달고 산다”면서 발을 동동 굴렀다.
겨울철 손세차 알바는 최근 한 아르바이트 정보 사이트에서 조사한 ‘겨울철 최악의 알바’ 상위 5위 안에 들었을 정도의 극한 알바다. 서울 송파구 장지동의 한 세차장에서 일하는 김모(51)씨는 해가 떨어질 때까지 야외에서 일하지만 외투도 걸치지 않은 가벼운 차림이다. 그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두껍게 입을 수가 없다. 이 일은 몸이 둔해지면 안 된다”고 말했다. 세차장 일을 끝낸 뒤에는 대리 운전 알바도 병행한다. 세차장과 마찬가지로 추위와 싸워야 하는 일이다. 김씨는 “몸이 힘든 것보다 이렇게 악착 같이 사는 게 더 힘들다”며 허옇게 얼어붙은 한숨을 내뱉었다.
이현주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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