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 출신 안사민은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인조를 호위하는 등 20년간 무관으로 근무했다. 그리나 ‘노비’ 꼬리표를 뗄 순 없었다. 전란 통에 입 하나 줄이겠다 내쳤던 주인은 안사민을 기어코 찾아내 반환소송을 낸 데 이어 다른 주인에게 팔아버렸다. 안사민은 20년간 여엿한 군인으로 봉직한 자신이 다시 노비가 될 순 없다고 효종에게 탄원서를 내 겨우 노비 신분을 면제받았다.
조선 왕의 인간애적 결단을 그린 미담일 수도 있다. 거꾸로 미국 내 한국학 대부 제임스 팔레가 왜 조선 후기를 ‘근세’가 아니라 ‘노예제 사회’라 부른지 짐작할 수 있는 ‘추노’의 실상이기도 하다. 이처럼 기존 정치사 중심의 기록에는 잘 드러나지 않은 사회상을 드러내 보여주는 ‘군영등록’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추진된다.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은 19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군영도감’의 2017년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해 번역과 함께 스토리텔링까지 가미해 국민들에게 선보일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군영등록은 조선 후기 훈련도감, 어영청 등 5군영의 근무자들이 매일매일 기록한 근무일지로 1593년부터 1882년까지 300년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병역을 둘러싼 당시 생활상이 다 담겨 있어 외교사, 전쟁사 뿐 아니라 사회사 연구자들에게 주목받아온 기록이었으나 접근이 어려웠다. 이 원장은 “군영등록은 민초들의 삶 그 자체를 드러낸 기록으로 조선 기록문화의 저력을 보여준다”면서 “한자를 아는 세대가 빠르게 사라져가고 있는 만큼 이 간격을 메울 수 있도록 한중연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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