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보건의료업계 종사자들이 과도한 업무 강도와 주변의 눈치에 시달려 임신 시기조차 마음대로 결정하지 못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5월부터 6개월간 전국 12개 병원의 여성 보건인력(간호사ㆍ간호조무사ㆍ전공의) 1,130명을 대상으로 한 인권 상황 실태조사 결과를 19일 발표했다.
인권위 조사에 따르면 ‘동료, 선후배의 눈치를 보지 않고 본인이 원하는 시기에 자유로운 임신을 결정할 수 있는지’여부를 묻는 질문에 전공의 응답자 71.4%는 ‘그렇지 못한다’고 대답했다. 간호직군(간호사ㆍ간호조무사)도 39.5%가 같은 응답을 했다.
이들은 법이 보장한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의 권리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에 응한 전공의 중 실제 출산휴가를 사용한 비율은 79.7%에 그쳤고 육아휴직을 썼다는 응답자는 없었다.
근로 강도도 셌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임신 중인 여성 근로자는 시간외근로나 야간근로를 하지 않게 돼 있지만 간호직군의 61.7%, 전공의의 77.4%가 ‘시간외근로를 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야간근로(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 경험을 묻는 질문에도 간호직군의 38.4%, 전공의의 76.4%가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병원 내 물리적, 언어적 폭력과 성희롱도 심각한 상황인 것으로 드러났다. 간호직군의 11.7%가 신체폭력을, 44.8%가 언어폭력을, 6.7%가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여성전공의도 각각 14.5%(신체폭력), 55.2%(언어폭력), 16.7%(성희롱)의 비율로 각종 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권위 관계자는 “보건의료 분야에서 모성보호와 관련된 근로시간 단축 혹은 조절 규제가 잘 작동되지 않는 현실을 보여주는 조사 결과”라며 “이에 대한 행정 지도 및 감독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현빈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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