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1월 19일
‘리옹의 도살자’ 클라우스 바르비(Klaus Barbie, 1913~1991)가 1983년 1월 19일 볼리비아 민선정부에 의해 체포돼 프랑스로 추방됐다. 프랑스 정부와 반나치 활동가들은 전후 38년 동안 그를 추적, 마침내 법정에 세웠다.
나치 친위대 산하 보안대를 거쳐 1942년 프랑스 비시정부 리옹 지구 게슈타포 책임자로 부임한 대위 바르비는 45년 종전될 때까지 1만4,000여 명을 살해하는 데 간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직무상 명령하고 결제만 한 게 아니라 고문 기술자로 직접 나서 가장 잔인한 수법으로 레지스탕스 등을 고문ㆍ살해한 이로 악명을 얻었다. 독일 슈피겔은 개를 동원한 성고문까지 가할 정도였다고 보도했다. 마르셀 오퓔스 감독의 다큐멘터리 ‘호텔 테르미누스(Hotel Terminus(1988)’는 바르비의 잔학성을 증언과 사료를 통해 재구성한 영화다. 리옹의 한 레지스탕스 대원의 딸은 영화에서 바르비가 아버지를 구타하고 산 채로 피부가 벗겨내는 고문을 가한 끝에 암모니아가 가득 담긴 양동이에 머리를 집어넣어 살해했다는 증언이 나온다.
프랑스 정부가 그를 체포하는 데 유달리 힘을 쏟은 것은 잔혹성 때문만이 아니라 바로 그가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국민 영웅 장 물랭(Jean Moulin, 1899~1943)을 체포해 죽이고 기사철십자훈장을 받은 장본인이기 때문이었다. 전쟁 전 기자와 행정가로 일한 물랭은 드골의 자유프랑스군 전국저항평의회 초대 의장이 돼 국내 레지스탕스 운동을 통합ㆍ지휘한 상징적 인물. 그는 리옹의 한 건물에서 지도자 회합을 주선하던 중 바르비의 게슈타포에게 체포돼 단 한 명의 동지도 팔지 않고 고문 끝에 숨졌다. 그는 관행상 숨진 지 한 세기는 지나야 묻힐 자격을 얻는다는(역사의 심판으로부터도 명예를 유지해야 한다는 정신 때문에) 팡테옹에, 드골의 제안으로 64년 안장됐다.
전후 바르비는 미군 방첩대(CIC)에 고용돼 미국의 비호를 받으며 유럽의 공산주의자 소탕전에 활용됐고, 50년대 초 새로운 신분을 얻어 볼리비아로 망명해 무기 거래상 등 사업가로 살아왔다. 현지에서도 미 CIA 등과 협조하며 남미 군부독재 정권을 도왔고, 67년 체 게바라 게릴라부대 공격시 작전 조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리옹 재판에서 그는 87년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앞선 궐석 재판에서 이미 두 차례 사형 선고를 받았지만, 재판 과정에서 그는 비시 정부에 협력한 프랑스인들에 대한 판결, 알제리 독립전쟁 중 프랑스 군이 저지른 만행 등을 들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했다. 그는 백혈병과 골수암 합병증으로 91년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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