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는 ‘헬조선’ 이슈에 이것도 하나 넣어야겠다. 기술적 무지의 함정을 이용해먹는 차량정비 비용의 거품 문제다.
신정연휴 가족과 승용차로 집을 나섰다가 낭패를 당했다. 음식점 주차장에 막 들어서다 빈 자리가 없어 돌아 나오려는 순간 멀쩡하던 차가 옴짝달싹 않아 진땀을 뺐다. 시동은 걸려있는데 기어가 물리지 않는 이상현상이었다.
한참 뒤 도착한 견인차 기사의 고장원인 진단은 큰 위안이었다. “별게 아녜요. 이 회사 차량이 유독 이런 말썽을 피웁니다. 기어레버 연결고리의 고무(부싱)가 닳아 깨진 겁니다”라며 기자의 집 인근 이 차량의 지정정비소에다 차를 부렸다. 정비소 측 진단도 같았다. ‘기어 케이블 부싱’이 터진 것 같으며 1시간 30분 가량 정비시간이 소요돼 비용은 10만원쯤 된다고 했다. 1시간 뒤 정비소에 갔더니 차는 벌써 고쳐져 있었다.
깜짝 놀란 것은 정비명세서를 받고서다. 부품값은 728원인데 작업시간에 대한 인건비, 즉 공임이 무려 10만7,100원이나 됐다. 총 수리비는 부가세 포함 11만8,610원. “이거 너무 심한 게 아니냐”는 불평에 업소 측은 인심 쓰듯 비용을 10만원으로 낮춰줬다.
두 번째 놀란 것은 집에 돌아와 문제 부품에 대한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다. 같은 회사 차량에 같은 고장으로 ‘열 받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절대 지정정비소에 가지 마세요. 터무니 없는 공임입니다”라는 내용이 많았다. “셀프정비로 1시간 30분 걸렸다”며 정비방법을 사진과 함께 블로그에 올린 이도 여럿 있었다. 공구라고는 드라이버 하나로.
한번 더 놀란 것은 시중의 정비가격. 기자가 정비소 10곳에 문제 부품의 교체비용을 물었더니 3만~13만원으로 완전 고무줄이었다. 어떤 곳은 “정비가 까다로워 2시간쯤 걸린다”고 했지만, 1급 정비공장을 운영하는 고향 후배는 “손가락 만한 고무 하나를 바꾸는 작업이라 부품가격은 거의 들지 않고, 숙련공이 붙으면 30~40분이면 가능하다”고 했다.
가만히 보니 문제 부품을 알리 없고, 아무 전조증상 없이 차량이 멎는 등 일반인의 기술적 무지를 이용해먹기 딱 좋은 조건에 기자가 걸려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견인차에 매달려 이곳 저곳서 비용을 흥정할 수 없는 사정도 그들은 빤히 알고 있을 터이다.
국토교통부가 자동차관리법을 개정, 지난해 1월 8일부터 정비업체로 하여금 요금을 공개토록 하고 있지만 무용론이 나올 만 하다. 소비자들이 이런 제도가 있는지도 모를 상황이면 당국의 정책의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고, 고무줄 정비비용이 여전한 것을 보면 업계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개정 자동차관리법은 정비사업자단체가 표준정비시간을 공개하고, 정비업자는 정비수요가 많은 작업에 대해 시간당 공임과 표준정비시간을 사업장에 게시하도록 했다. 또 정비업자가 공개를 않을 경우 과태료 부과에다 사업자 등록까지 취소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공개를 통한 비용 합리화’란 규범 취지는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이다. 인터넷 홈페이지나 사업장 게시를 통해 공임과 정비시간을 알리게 했지만 동네 정비소 대부분이 홈페이지를 운영할 규모가 아니어서 소비자가 직접 발품을 팔지 않고는 비용 비교가 어렵기 때문이다. 비교가 안 되는 공개는 무슨 의미가 있나.
개정법은 또 ‘공개’만 강제했지 고무줄 비용이 얼마든 가능케 했다. 국토부는 “시간당 공임은 정비업체가 개별적으로, 표준정비시간은 정비사업자단체가 산정하나 자동차제작사, 구조, 정비공구, 작업자의 숙련도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비용산정은 정비업체 자율이라는 뜻이다. 행정지도 책임이 있는 자치단체도 “우리는 공개사항을 게시했는지 만 체크할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 같은 IT강국이 메이커, 연식, 차종, 부품을 입력하면 표준정비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웹사이트를 왜 못 만드는지 모를 일이다.
목상균 부산본부장 sgm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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