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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정치적 타협으론 과거사 질곡 못 벗어난다”

입력
2016.01.18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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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준 교수는 “한일이 과거를 직시하고 미래로 가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사실관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동준 교수는 “한일이 과거를 직시하고 미래로 가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사실관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일관계가 역사의 질곡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은 양국 관계의 원점인 반세기 전 한일회담이 식민 지배의 과거사를 역사의 뒤안길에 묻자는 정치적 타협을 했기 때문입니다.”

일본 기타큐슈대에서 국제정치를 가르치고 있는 이동준 교수는 최근 한국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대로 한일 양국은 국교정상화 후 반세기가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숙제를 안고 있다. 근본적으로 한일합병의 불법성에 대한 해석이 다르며 일제강점의 유산인 강제징용, 사할린 이주, 문화재 반환 문제 등을 두고 지금도 법적, 정치적 다툼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갈등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다.

이 교수는 한일관계의 매듭을 풀기 위한 첫 작업이던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협상의 전모를 담은 일본 정부 보고서를 번역해 지난달 말 ‘일한 국교정상화 교섭의 기록’(삼인 발행)이라는 책을 냈다. 이 책은 14년에 걸친 한일간 협상이 끝나고 2년 8개월 뒤 일본 외무성이 회담에 직접 관여한 관료 19명을 동원해 만든 것으로 공식 기록과 회의록, 인터뷰 자료 등을 망라한 한일회담 종합보고서이다. 외무성은 이 보고서 편찬에 2년 6개월이 걸렸다.

그러나 이 외교문서는 2006년부터 여러 문서 속에 섞여 드문드문 공개된 탓에 존재 자체가 알려지지 않았다. 이 교수는 ‘일한회담 문서 전면공개를 요구하는 모임’ 등 일본 시민사회와 학계의 도움으로 이 자료를 재구성해냈다. 이들 문서 중 ‘1편 총설’(4,636매)을 하나로 엮어 번역한 것이 이번에 낸 1,200쪽 분량의 ‘일한 국교정상화 교섭의 기록’이다. 일본에서도 거의 검토되지 않은 자료다. 이 교수는 “우리의 관점에서 해방 후 한일 관계의 원점인 ‘1965년 체제’로 되돌아가 잘못 묶인 매듭의 실체를 낱낱이 들여다본다는 뜻에서 한국어 번역본을 먼저 냈다”고 말했다. 인터뷰 내용을 정리했다.

-일본쪽의 한일협상 기록을 낸 계기는.

“일본 학자들과 2006년 이후 공개된 한일회담 관련 외교문서를 분석해왔지만, 공개 이후에도 상당 기간 이 백서의 존재는 알려지지 않았다. 각 장이 흩어져있었고 순차적으로 공개됐다. 먹칠해 삭제된 부분도 많았다. 책의 존재를 숨기고 싶어했다는 의혹이 다분했다. 그래서 알려야겠다 싶었다. 손으로 쓴 문서가 많았고, 갈겨 쓴 한자가 대부분이어서 초벌 번역에만 4년, 교열에 2년이 걸렸다.”

-일본 외무성이 이 보고서를 만든 이유는 무엇이고, 왜 그걸 숨겼나.

“책은 곳곳에서 일본 주장의 정당성, 성과를 말하지만 정책결정과정, 의도 등을 그대로 보여준다. 당시 외교문서도 총동원됐다. 우리 정부가 당시 ‘대국민 홍보용 팸플릿’에 가까운 ‘한일회담백서’를 만들고 이제 산업화할 수 있다고 ‘장밋빛’ 희망만을 강조한 데 비해 일본은 사실관계의 기록에 매우 충실한 듯하다. 향후 대한 외교정책의 기초자료로 쓰기 위한 것이다.”

-백서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일본의 회담 의도는.

“회담에서는 우리가 주창해온 ‘해방(liberation)’의 논리가 아니라, 일본 측이 시종일관 견지해온 ‘분리(separation)’의 논리가 관철됐다. 분리란 원래 한 몸이었던 한국이 종주국이었던 일본으로부터 떨어져 나온다는 의미로, 조선에 대한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당연시 하는 개념이다.

알려져 있듯 한일회담의 주제는 식민지 기간 전체가 아닌 1937년 중일전쟁부터 45년까지 태평양 전쟁 종료까지이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한국을 식민지화한 것은 정당하다, 합법적이었다’는 전제로 회담을 하고 있고, 우리 정부는 여기서 식민지 책임을 거론하거나, 논쟁을 끌어내지 못했다. 청구권 협상만 봐도 논의가 불법 부당한 식민지 책임에 대한 피해배상 요구가 아니라 ‘분리’에 따른 재산, 권리, 미불금, 근무 중 부상에 대한 보상금 등의 이슈로 모아졌다. 결국 일본은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식민지 지배 자체를 불법이라고 인정한 적이 없다. 한일 의견차와 모든 문제들이 여기서 파생한다.”

-위안부 문제도 마찬가지인가.

“지난달 한일 합의에서 일본이 끝까지 위안부 문제의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 즉 불법이었다고 보지 않는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사과를 하긴 하지만 법적으로는 ‘당시 조선인도 모두 일본 제국 치하 일본인으로 제국법에 의해 동원돼 일본인으로 할 일을 다한 것’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이 불법성을 인정하는 순간 위안부든 뭐든, 전체 식민 지배 불법성 문제가 불거지니 일본은 강경할 수 밖에 없다.”

-한국 정부는 이번 위안부 타협을 성공으로 본다.

“50년 전에도 정치적으로 얼렁뚱땅 담합해놓고 또 이렇게까지 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일본은 아직도 식민 지배 자체나 위안부 강제동원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는데 이렇게 정부간 합의를 해버려 한국 피해자들이 배상을 호소할 일이 막막해졌다. 봉합하고 덮어서 정상화할게 아니라 갈등 속에서도 따질 것은 따져야 진정한 한일관계 정상화가 가능하다.”

-회담 기록을 보면 문화재 관련 언급도 문제의 소지가 있는데.

“이 기록에 따르면 한국에서 반출된 문화재를 일본인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경우, 일본 정부는 사유재산에 대해 말할 권리가 없다는 이유로 각 개인이 이를 한국에 돌려주기를 ‘권장하는 바’라는 문구를 채택하고자 했고 한국이 이를 수용했다. 즉 반환 여부는 문화재를 약탈하거나 추후 확보한 일본인 개인 의지에 달렸다는 얘기다. 만약 한국 정부나 환수위가 약탈 문화재를 찾아 사실을 규명해도 돌려받기 쉽지 않은 셈이다. 또 다른 정치적 타협이었다.”

-일본 의회가 올해 1944, 45년 특별회계 결산안을 처리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조선 간이생명보험, 우편연금특별회계 등의 돈은 현재 남한과 북한에 흩어진 조선인 개인의 청구권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이것을 회계청산, 즉 결산을 해서 없애버리겠다는 것인데 상당한 논란을 야기할 것이다. 일본은 계속해서 65년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모든 것이 완전히 영구히 해결됐다고 주장하지만, 한국 법원은 개인의 청구권은 남아 있다고 법적으로 해석했다.

당시 한국 정부가 포기한 것은 외교보호권이었을 뿐이다. 이 돈을 일본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산처리해버린다면 그야말로 폭력적인 조치다. “더 이상 사죄하지 않겠다”는 아베 총리의 전후 탈각 조치의 일환으로 거의 막가자는 수준이다. 장부상으로는 물가 상승 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금액들이어서 제대로 따지면 액면 금액의 수천 배가 될 것이다. 장부상 기록도, 한국인의 개인 청구권도 다 날아가게 생겼다. 한국 정부가 이 문제의 법적, 정치적 의미를 검토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이 기록을 어떻게 연구, 활용할 수 있을까.

“과거를 직시해야 미래로 갈 수 있지 않나. 우리가 과연 과거를 직시하고 있나. 과거를 직시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사실관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 잘못했던 것, 담합한 것, 놓친 것 등을 분명히 하고 재평가해야 왜 지금 문제들이 해결 불가능한지 분명히 알 수 있다. 일본 문서라고 배척할 것이 아니라 사실관계 확인에 보탬이 된다면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한국 현대사가 많은 것을 덮어 왔지만 가장 근본적인 난제는 역시 식민지 문제다.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 문제를 정면에서 다룰 때 한일 관계의 진짜 정상화가 가능할 것이다.”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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