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한국의 행복 패러독스 ‘60대’
건강 등 7가지 항목 조사
경제 만족 10점 만점서 5.2
가족ㆍ친구관계 만족도 최저
“정책 초점 60대에 맞춰야”
나이가 들수록 행복감이 떨어지는 한국의 하향 사선형(↘) 행복 구조는 세계적인 경향성과 큰 차이가 있다. 통상 경제 수준이 어느 정도 올라 있는 국가에서는 청년층과 노년층의 행복감이 높고, 35~50세에서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U자형 행복도 분포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이 2014년 발간한 보고서‘한국에서 주관적 행복감의 측정과 해석’에서 하향 사선형 행복 구조에 대해 외국학자는 “규명돼야 할 수수께끼(퍼즐)”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국가적인 행복 수준을 높이기 위해 60대 이상 세대 문제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이유다.
60대 이상 세대는 단순히 행복감만 낮은 게 아니다. 한국일보의 4개국 국제비교 조사에서 건강과 경제적 상태, 노후생활준비, 주거 및 생활환경, 가족 및 주변친구, 동료와의 관계 등 7가지 항목의 삶의 질 만족도 조사에서도 우리 60대 이상 세대는 다른 세대보다 대부분 만족도가 낮았다. 공적 연금을 비롯해 낮은 수준의 복지제도와 은퇴 이후 열악한 2차 일자리, 성장한 자녀의 지원 부족, 가정에 대한 가치관 변화가 맞물린 탓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경제적 상태다. 10점 척도에서 5.2점으로 전 세대(평균 5.7점) 중에서 가장 낮다. 반면 덴마크(평균 5.9점)ㆍ일본(평균 4.9점)의 노년층 만족도는 각각 6.5, 5.4점으로 전 세대 중 가장 높았다. 지난해 OECD조사에서 한국 노년층의 상대빈곤율(중위소득 이하 비율)은 49.6%로, OECD 평균(12.6%)의 약 4배, 전체 1위를 기록한 것과 무관치 않다. 사회안전망이 열악한 상태에서 경제적 상태는 행복감과 직결될 수밖에 없다.
직장 은퇴 후 서울에서 9년째 아파트 경비 일을 하고 있는 임모(63)씨는 월급 120만원으로 부부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13만원 나오는 국민연금을 제외하면 임씨가 추가로 기대할 수입원이 없다. 임씨는 “평생 먹고 사는 일에 급급하다”며 "지금 경비 일도 재계약이 걸려 있어 아파도 티를 못 낸다”고 탄식했다.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국민연금으로 노년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며 “우리 노년층 상당수는 자식의 지원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끊임 없이 노동을 요구 받지만, 대부분 저임금 일자리에 집중돼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통계청의 지난해 기준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국내 65세 이상 고용률은 31.3%에 그쳐 저임금 일자리마저 구할 수 없는 노년층이 상당수 존재한다. 노후 준비 역시 우리 60대 이상 세대는 10명 중 3명(30.9%)만 만족한다고 답했다. 만족한다는 답이 절반을 넘는 덴마크(53.7%)나 브라질(72.7%)과 비교됐다. 일본(35.1%) 역시 한국보다 높다.
경제적 불안감은 이미 무너지기 시작한 건강 걱정을 가중시킨다. 우리 노년층의 건강상태 만족도는 5.9점으로 전 세대 최저치이며 덴마크, 브라질보다 현저히 낮다.
20여년 전 제조업 생산직 은퇴 후 일용직 근로자로 일하는 김모(63)씨는 월급의 4분의 1 수준인 40만원을 병원비와 보험료로 지출하고 있다. 김씨는 "나이가 들면서 골절을 많이 당하지만 보험 처리가 되지 않는 진료가 많다”며 “앞으로도 돈을 더 벌어야 하는 데 벌써 몸이 말을 듣지 않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조흥식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령층의 건강문제는 보편적 현상이지만, 한국은 특히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정신적 불안이 육체적 건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노년층은 사회적 관계에 있어서도 불안정하다. 가족이나 친구 등 주변 사람들에 대한 만족감마저 전 세대 중에서 가장 낮다. 사회적 관계에 대한 만족감이 가장 높은 3개국 노인층과 크게 대비된다. 최근 5급 공무원으로 은퇴한 이모(60)씨는 "대부분 직장에서 사람들을 사귄 우리 세대는 퇴직 후 관계 단절로 인한 상실감에 우울증을 호소하는 동료가 많다"고 말했다.
특히 우리 노년층의 가족 만족도가 낮은 것은 가부장이라는 전통적인 가치관이 무너지면서 가정에서의 소외가 원인으로 보인다. 정태석 전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는 “60대 남성의 경우 시대 변화로 예전만큼 제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아 박탈감을 호소한다”며 “이를 극복하지 못해 황혼이혼이나 독거노인 등 관계 단절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장재진기자 blanc@hankookilbo.com
[글 싣는 순서]저성장 시대, 한국인의 행복 리포트
1. 한국의 행복 패러독스 ‘60대’
2. 경쟁에 짓눌린 행복
3. 세계 석학이 말하는 한국의 행복
4. 7년째 묘연한 국민총행복지수
5. 구호만 요란한 행복 정책
6. 다국적 빅 데이터로 본 행복
7. 국내 전문가의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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