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가 “돈이 가장 중요 조건”
덴마크 답변 비율의 2배 수준
압축성장ㆍ높은 인구밀도 탓
다른 사람 재력ㆍ자녀 성취에 민감
국가 富 늘었어도 서민 행복감 하락
주식 투자로 최근 70억 원을 벌게 된 사업가 조모(43)씨 삶은 2년 전과 비교해 180도 바뀌었다. 서울 외곽에서 강남의 아파트로 집을 옮긴 조씨는 1억원 상당의 외제 승용차도 새로 구입했다. 두 딸을 위한 사교육비도 확 늘렸고, 가족과 해외여행도 네 차례나 다녀왔다. 조씨가 가장 흡족해한 부분은 따로 있다. 단지 돈이 더 생겼을 뿐이지만 삶의 만족도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친구나 선후배들이 저를 볼 때마다 무척 부러워했어요. 그러다 보니 예전처럼 위축되는 일도 없었고 일할 때도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흔히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고 말하지만 한국 사회는 조씨 경우처럼 돈이 행복을 좌우하는 양상이다. 국가적 부는 늘어났지만 상류층은 더 행복하고, 하층은 덜 행복한 형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행복 구조가 갖는 또 하나의 문제는 소득 상위집단과 하위집단이 느끼는 행복도 격차가 매우 크다는 점이다. 소득 양극화가 행복 양극화로 이어지는 흐름이 매우 두드러진다. 압축성장 과정에서 배금, 물질주의가 팽배해진데다 강한 비교성향이 상승작용을 일으킨 탓으로 분석된다.
소득 격차가 행복 격차로
한국일보의 국제비교 결과를 보면 한국의 소득 상층 행복도(10점 척도 기준 8.8점)는 하층(4.3점)보다 2배 이상(4.5포인트) 높다. 반면 행복 선진국인 덴마크는 상층(6.9점)과 하층(4.9점)의 행복도 차이가 2포인트에 불과했다. 빈부 격차가 한국보다 심한 브라질도 소득에 따른 행복도 차이(3.2포인트)가 우리보다 심하지 않다.
이러한 조사결과는 소득이 적을수록 고소득자와 비교해 불행하다고 느끼는 정도가 유독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적 여건, 부가 중시될 수밖에 없는 사회적 환경 탓도 무시할 수 없다. 이는 노후 준비 만족도에서도 확인된다. 노후 준비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비율이 36.1%로 덴마크(26%), 브라질(23%)보다 훨씬 높다. 불안 요인도 노후 준비라는 응답 비율(23.3%)이 3개국보다 월등히 높다. 소득 격차가 큰 집단일수록 행복도 차이가 커진다는 연구결과(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네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한국적 상황에서도 확인되는 셈이다.
문제는 소득수준과 연관돼 한국의 행복 양극화가 심화할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소득을 기준으로 빈부격차를 가늠하는 지표인 지니계수(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가 1990년 0.256에서 2014년 0.277까지 상승해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 사회 안전망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저소득층일수록 현재는 물론 미래가 불안하고, 낮은 행복도로 표출된다. 경제가 성장해도 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이른바 ‘궁핍화 성장’이 국민 전체적인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행복의 궁핍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반면 1등 행복국가인 덴마크의 경우 그 비결은 생활보장과 안심 제공에 있다. 국민이 무거운 세금 부담을 짊어진다는 전제가 있지만 의료ㆍ교육 비용이 거의 무료이고 높은 연금 및 실업보험 등 복지제도가 행복 격차를 줄이는 것은 물론 전체 행복 수준을 높이고 있다. ‘행복의 경제학’ 저자인 일본의 다치바나키 도시아키(橘木俊詔) 교수는 “경제적으로 곤란해지면 정부가 지원해 준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덴마크인의 행복도가 매우 높다”고 분석했다.
비교 좋아하는 성향도 문제
행복 양극화에 한국인의 비교성향은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본인의 경제수준이나 자녀의 성공 여부를 주변 사람과 비교하는 비율도 한국(39.2%)이 소득 수준이 높은 일본(36.6%) 덴마크(25.8%)보다 컸다. 한국에서 고가 명품이 잘 팔리는 이유도 이를 과시하면서 자기 만족을 높이려는 심리가 깔려 있다. 국내 한 대형백화점의 특정 명품 브랜드 매출은 2011년부터 4년간 매년 10~30%씩 급증했다. 행복경제학자인 유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좁은 국토에 많은 사람이 살다 보니 남과의 비교에 굉장히 민감하고 소득과 학벌, 직업 등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행복의 가장 중요한 필요조건으로 ‘경제적 여유’를 꼽은 비율은 우리나라와 일본이 각각 20.9%와 26.4%로 덴마크(11.6%)와 브라질(18.2%)보다 훨씬 높았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물질적 가치를 행복과 연결하는 경향이 뚜렷함을 보여준다. 유 교수는 “경쟁에서 이긴 사람들만 고소득으로 이어지는 사회에선 전체적인 국민들의 행복도가 높을 수가 없다”며 “소득 재분배 정책과 함께 고소득층의 기부 및 자원봉사가 확산되면 행복지수를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ankookilbo.com
[도움말 주신 분]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정책조사실장
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김병섭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김은주 연세대 교육대학원 교수
배영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교수
유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정태석 전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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