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16일(현지시간) 핵무기 개발과 관련한 서방의 경제ㆍ금융제재 해제로 국제사회에 복귀했다. 20007년 3월 유엔 안보리 차원의 본격적인 제재가 시작된 지 9년만이다. 중동지역 내 종파 갈등과 서방의 정치적ㆍ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키면서 이란은 새로운 세계질서 재편의 한 축을 담당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란은 이번 경제ㆍ금융제재 해제로 국제사회에서 핵심 ‘플레이어’로서 위치를 되찾게 됐다. 이란은 원유와 천연가스 매장량이 각각 세계 4위, 2위인 자원대국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당장 되찾게 될 해외 동결자산의 규모만 1,000억달러(약 122조원)에 달한다. 또 중동지역 내 최대규모인 8,000만명의 내수시장을 갖고 있고, 인구의 70%가 30대 이하인데다 고졸 이상의 고급노동력도 풍부해 성장잠재력이 상당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이를 토대로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이란과 세계와의 관계에서 새로운 장이 열렸다”고 선언했다.
이란은 이번 해제 조치를 계기로 이라크ㆍ시리아ㆍ레바논 등 ‘시아파 벨트’를 묶어내면서 중동지역 내 맹주 자리를 넘볼 것으로 보인다. 이란이 과거 페르시아의 영광을 재현하겠다고 나설 경우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정면충돌도 불가피하다. 사우디가 지난 2일 자국 내 시아파 지도자 4명을 집단처형하자 이란 시위대가 테헤란 주재 사우디 대사관을 공격하는 등 양측간 갈등은 이미 시작됐다.
특히 이 과정은 국제사회의 질서 재편과 맞닿아 진행될 공산이 커 보인다. 미국 정부의 셰일산업 지원 정책으로 미국과 사우디 관계가 예전 같지 않은 반면 이란과 미국은 핵 협상 타결을 고리로 해빙무드에 접어들었다. 이란이 지난 12일 자국 영해 침범을 이유로 미 해군 경비정 2척과 군인 10명을 나포했다가 양국간 외교수장 채널이 가동된 지 하루 만에 전격 석방한 게 단적인 예다. 미국 입장에서는 이슬람국가(IS) 격퇴와 시리아 사태 해결을 통해 중동 정세를 안정시키려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 이란이 전략적 파트너로서도 의미가 있다.
이란은 또 유럽 주요국과 경제분야 협력을 발판으로 정치ㆍ외교적 접촉면을 급격히 넓혀가고 있다. 미국과 함께 이란 핵 협상에 참여했던 독일과 영국, 프랑스 등은 이란에 대한 경제ㆍ금융제재가 공식 해제된 직후 일제히 “세계를 더 안전하게 만든 외교의 승리”라며 환영했다. 미국이나 유럽연합(EU)이 중동지역 내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이란을 주요 파트너로 삼을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하지만 이란의 세계무대 복귀가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적지 않다. 유가 하락으로 경제적 위기에 봉착한 사우디가 강공책으로 일관하는 상황에서 이란 내 보수강경파가 오는 2월 총선과 전문가회의(최고지도자 선출) 선거를 겨냥해 정면대결을 부추길 경우 중동지역 내 종파 갈등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수 있다.
이란이 지난 11일 고정밀장거리유도미사일 ‘에마드’를 시험발사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는 것처럼 탄도미사일 문제가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미 재무부는 17일 성명을 통해 “이란의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신규 제재를 부과할 것”이라며 “아랍에미리트와 중국에 있는 이란 국영기업 5곳이 미국의 블랙리스트에 오를 것”이라고 밝혔다. 미 의회 다수당인 공화당은 이번 해제 조치 무력화와 함께 에마드 시험발사에 대한 별도 제재를 검토하고 있던 중이었다. 유력 대선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이란 핵 합의 이행에 대해 ‘불신하고 검증하는’ 접근법을 강조하는 등 민주당 내에서도 비판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양정대기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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