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고자장(告子章) 하(下) 14편에 나오는 얘기다. 진자(陳子)가 맹자에게 물었다. “옛날 군자들은 어떤 경우에 벼슬을 했습니까?” 맹자의 대답은 세 가지였다. 첫째, ‘(군주가) 맞이할 때 공손함을 다하여 예(禮)가 있고, 진언할 때 그 진언대로 행하려고 하면 관직으로 나아간다. 예가 줄어들지 않더라도, 진언을 (군주가) 행하지 않으면 관직을 떠난다’고 했다. 요컨대 관직에 나아가려면 공경을 받아 자신의 진언을 임명권자에게 관철시킬 수 있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물러나야 한다는 얘기다.
▦ 맹자는 둘째로 ‘비록 (군주가) 진언한 것을 행하지는 않지만 맞이할 때 예의가 있으면 관직으로 나아간다. 그러다 예의가 줄어들면 떠난다’고 했다. 최고 수준은 아니라도, 관직에 나아가는 게 부끄럽지 않은 조건으로 예우를 든 것이다. 셋째는 요즘의 ‘낙하산 인사’ 비슷하다. 맹자는 ‘굶주렸을 때, 군주가 소식을 듣고 “비록 (출사자의) 도를 행하거나 진언을 따르진 못해도 내 땅에서 굶게 할 수는 없다”며 관직을 준다면 받아도 좋다’고 했다. 구휼 성격의 가장 비루한 출사 조건인 셈이다.
▦ 최근 김종인 전 의원의 더민주당 입당을 두고 말이 많다. 일각에선 노태우 정부 때의 활동과,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의 편에 섰던 전력을 들어 이번 야당행을 ‘철새 행태’로 매도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김 전 의원은 최소한 ‘경제민주화’ 소신만 봐도, 관직에 연연해 비루하게 굴었던 사람은 아니다. 노태우 정부 때도 그랬고, 지난 대선에서도 합당한 예우를 받고 자신의 뜻을 펼 수 있으리라는 믿음에서 박 후보 편에 섰다. 그리고 집권 후 박 대통령이 경제민주화에 대한 입장을 바꾸자 미련 없이 결별했다.
▦ 따라서 김 전 의원은 ‘철새’이긴커녕, 오히려 출사를 결정함에 있어서 자신의 뜻을 펼 수 있는지 여부를 가장 중요하게 따진, 어찌 보면 고지식한 군자에 가깝다. 이에 비해, 모양이 썩 아름답지 못해 보이는 건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취임이다. 어쨌든 메르스 사태 총책임자로서 사회와 정권에 큰 폐를 끼쳤다면 스스로 근신을 자청해야 옳았다. 그런데도 자신에게 면죄부를 준 석연찮은 감사 결과 뒤에 숨어 재빨리 연금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공인이라는 이들의 진퇴가 이렇게 다르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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