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46) 올림픽 축구대표팀 감독의 현역시절 별명은 ‘그라운드의 여우’다. 경기 흐름을 짚는 시야와 상황대처 능력 등 ‘축구 지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는 지휘봉을 잡은 후에도 여우다운 면모를 확실히 드러냈다. 2009년부터 프로축구 K리그 성남 일화(현 성남FC) 감독을 맡은 그는 당시 플레이오프(PO)전 포항 스틸러스와 경기에서 이른바 ‘무전기 매직’을 통해 팀을 리그와 FA컵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퇴장 당한 감독이 관중석에서 무전기를 들고 선수들에게 작전 지시를 내리던 모습은 이전까지 축구계에서 볼 수 없었던 진풍경이었다.
그는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서도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신 감독은 기존 국내 감독들과 달리 연일 파격적인 ‘실험 축구’를 구사하고 있다. 경기 중에도 전술과 선수를 수시로 바꾸는 그의 축구는 한때 우려를 자아냈지만, 이제는 ‘신태용표 매직’으로 통하고 있다. 그가 이끄는 올림픽 대표팀은 17일(한국시간) 새벽 카타르 도하의 카타르 SC스타디움에서 끝난 2016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조별리그 C조 예멘과의 2차전에서 5-0 대승을 거두고 2연승으로 8강 진출을 확정했다. 23세 이하로 출전 연령이 제한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이후 올림픽 최종예선에서 작성한 한국 대표팀의 최다득점 및 최다골 차 승리 신기록이다.
신태용호는 이번 대회에 앞서 치러진 아랍에미리트연합(UAE)(2-0 승),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평가전(0-0 무)에서도 다양한 전술변화를 시도했다. 지난 4일 열린 UAE전에서는 선발 11명 가운데 10명을 후반에 교체했다. 전술도 4-3-3 포메이션에서 4-1-4-1 포메이션으로 변화를 줬으며 후반 막판에는 4-4-2 포메이션을 가동했다. 신 감독은 사우디전에서도 4-3-3 포메이션과 4-4-2 포메이션을 돌렸다. 그는 미드필더 박용우(23ㆍFC서울)를 활용한 색다른 전술변화도 시도했다.
예멘과 경기 전 인터뷰에서 “8강 이후 맞붙을 팀들이 (우리를) 관찰하고 있다. 전술변화로 혼란을 줄 필요가 있다”고 밝힌 신 감독은 4-1-4-1 포메이션을 꾸렸다. 두터운 미드필드진의 공격력을 통해 상대 수비라인을 무너뜨리겠다는 심산이었다. 결과는 적중했다. 공격형 미드필더로 투입된 권창훈(22ㆍ수원 삼성)은 이날 공격포인트 4개(3골ㆍ1도움)를 올렸다. 처음 선발로 나선 김승준(22ㆍ울산 현대)도 쐐기골을 넣으며 신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20일 새벽 이라크와의 조별리그 3차전을 앞두고 있는 신 감독은 맞춤형 전술을 들고 나오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압둘 가니 사하드 이라크 감독도 “한국전에 대비해 특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맞섰다. 신 감독의 변화무쌍한 축구에 상대팀 감독도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다.
축구 전문가 신문선 명지대 교수는 17일 본보와 통화에서 “기존 국내 축구대표팀 감독들도 상대에 따라 변화를 줬지만, 신 감독처럼 구체적으로 전술 몇 가지를 들고 나온다든가 선수를 대거 바꾼 경우는 드물었다. 권창훈 등 핵심 선수들마저 매 경기 후보와 선발진을 오가고 있다. 상대팀은 충분히 혼란을 겪을 수 있다”며 신 감독의 전술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신 교수는 “8강에 안착한 만큼 이라크전에선 선수들의 체력안배에도 신경 써야 한다. 향후 열릴 8강 토너먼트에서는 안정적으로 경기를 운영하면서도 이기는 축구를 구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종민기자 mi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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