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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비난의 정치’와 교육 갈등의 증폭

입력
2016.01.17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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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13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아이들을 볼모로 잡고 사실을 왜곡하면서 정치적 공격수단으로 삼고 있어서 참으로 안타깝다!” 누가 무엇에 대해 한 말일까? 지난 13일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누리과정을 두고 행한 발언이다. 청와대 브리핑 자료를 보면, 대통령은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불안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면서 7개 교육청이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은 데 대해 ‘정치적이고 비교육적인 행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의 발언에 주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 내용이 너무 일방적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언급하고 있는 ‘7개 교육청’은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한 푼도 편성하지 않은 교육청들이다. 그 가운데 세종, 강원, 전북을 제외한 광주, 전남, 서울, 경기 교육청은 유치원 예산까지도 전액 미편성하였다. 어린이집 예산을 편성한 10개 교육청의 경우에도 고작 2~9개월 치에 불과하다. 유치원의 경우 1년 치 예산을 모두 편성한 곳은 7개 교육청뿐이다.

이 정도만 하더라도 대통령의 발언이 일방적이란 점을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17개 시ㆍ도교육청 모두 다 그만한 사정이 있어서인데, 역지사지의 마음을 전혀 읽을 수 없다. “교육감들이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예산을 편성할 수가 있는 상황”이란 대통령의 발언은 그저 모든 책임을 교육감에게 돌리는 비타협적인 모습으로 비친다. 그 정도로 누리과정 예산이 정치 의제로 변질되고 만 것이다. 더 이상 예산이나 재정의 문제가 아니란 뜻이다.

누리과정 예산 갈등이 되풀이되는 이유는 이 정책을 시작한 정부가 재원을 추가로 확보하지 않은 데 있다. 지방재정교부금을 융통하여 충당하도록 하였기 때문인데, 교부율을 높여 재원을 늘리는 등의 근본적인 해법이 강구되지 않는 한 논란을 피할 길이 없다. 하지만 교부금 증대 여부 등의 ‘돈 문제’였다면, 지금처럼 사태가 악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차제에 돈으로 옥죄어 교육감들의 운신의 폭을 줄이겠다는 정치적 판단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정부의 행보가 2018년 교육감 선거와 관련이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이겠는가. 교육재정 파탄의 책임을 특별히 13개 ‘진보교육감’에게 덧씌우려는 정치적 셈법에서 나온 것이라는 얘기다. 예산 미편성 책임을 교육청으로 돌리는 교육부와 보건복지부의 ‘서한 정치’나 경제부총리의 ‘누리과정 예산편성 촉구 담화문’에 그런 점이 잘 드러난다. 교육부의 난데없는 교육청 예산 점검 소동도 같은 맥락으로 “비난의 정치”라고나 해야 할 것이다.

딱한 것은 정부가 자신들의 행보를 정당화하기 위해 행정입법을 남발해왔다는 점이다. 누리과정 논란만 하더라도 2011년 9월 30일 유아교육법 시행령 개정을 거쳐 어린이집을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 의한 무상교육 대상으로 만들었다. 작년 10월 6일 지방재정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어린이집을 시ㆍ도교육청의 의무지출 대상으로 한 것 역시 행정입법의 전형이다. 국회 차원의 공론을 피하려는 정부의 행정 편의주의가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는 형국이다.

내친김에 정부는 위법행위도 불사한다. 갈등 현안인 국립대 총장 직선제 폐지 방침이 그 좋은 예다. 교육공무원법으로 보장되어 있는 총장 직선제를 행정지침이나 재정지원 사업 평가 등으로 원천 봉쇄하고 있다. 사정이 이럴진대 교육부가 권한 다툼의 소지가 있는 관계 법령을 정비하는 등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설 것으로 기대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위법과 행정 편의주의를 오가면서 자신들의 정책 의지를 관철시키는 데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까지 나선 이번 누리과정 예산 갈등 역시 “입법지체 상황”을 타개하지 않으면 안 될 현안이다. 기존의 교육법령은 교육부장관과 교육감의 권력 불일치를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교육감 주민직선제 이후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 중앙과 지방 교육 정치-행정 권력의 불일치로 인한 정책 경쟁과 갈등이 빈발하기 때문이다. 교육청이 아우성치고, 학부모의 불안이 가중되는 문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교육부장관과 교육감의 사무와 권한에 관한 법령 정비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김용일 한국해양대 교직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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