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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봤지, 밉보이면 밀려나'… 멀기만 한 “검찰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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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봤지, 밉보이면 밀려나'… 멀기만 한 “검찰 독립”

입력
2016.01.1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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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대선개입 수사팀 좌천ㆍ사직

간첩조작 ‘들러리’ 수사팀은 복권

같은 징계 받고도 다른 인사 조치

“정치에 조직이 휘둘린다는 위축감”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건물에 검찰 로고가 새겨진 가운데 출입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유리에 비치고 있다. 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건물에 검찰 로고가 새겨진 가운데 출입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유리에 비치고 있다. 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윤석열 검사나 박형철 검사의 경우처럼 누가 봐도 뻔히 부당하다고 비칠 인사는 처음 봤다. 내가 아는 한 이렇게 심한 경우는 없었다.”

수도권 지역의 중간간부급 A 검사는 지난 12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검찰 좀 시원하게 비판해 달라”며 이렇게 말했다. 국가정보원 대선개입사건 특별수사팀장 윤석열 전 팀장과 박형철 부팀장이 3년째 지방고검 검사로 좌천인사를 당하자, 박형철 부장검사가 최근 사표를 냈다는 소식을 접한 후였다. 그는 “솔직히 너무 안타깝고 속상하다. 정말 훌륭하고 유능한 인재를 잃었다”고 심경을 전했다.

수사와 기소를 독점한 검찰의 막강한 권한을 이용하고 싶지 않은 정권은 없겠지만 최근 검찰 인사는 사실상 인사를 통해 검찰권을 마음대로 부리겠다는 의지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대검 공안 2과장,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장을 지내며 선거법 전문가로 입지를 굳혀온 박형철 검사를 3년째 지방고검에 보내는 건 사실상 ‘퇴직 권고’다. 고검은 직접 수사권이 없어 수사를 업으로 삼는 검사들에게는 퇴직 직전의 한직으로 꼽힌다. 정권 차원의 외압에 맞서 국정원 대선개입사건 수사를 강행한 데 대한 대가인 셈이다.

지방검찰청의 한 검사는 “MB정권 이후 인사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정치에) 조직 자체가 휘둘린다는 검찰 내 공감대가 있다”며 “(권력에) 위축되고 눈치를 보는 건 사실”이라 말했다. A 검사는 “지방고검에 잇따라 발령 내는 건 진짜 나가라는 소리”라며 “국민이 뭐라하든 (인사)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식이다.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걸 모르는 거다”고 말했다.

윤석열, 박형철 검사의 인사와 뚜렷하게 대조되며 검사들 사이에서 회자된 인물들이 있었다. 국정원의 ‘서울시 간첩’ 증거조작 사건 재판을 담당했던 이문성, 이시원 검사다. 국정원 직원의 증거조작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았지만 이번 인사에서 각각 광주고검에서 전주지검 부장검사로, 대구고검에서 법무연수원 기획과장으로 발령이 났다. 검찰 내부에서는 ‘사실상의 복권(復權) 단계에 들어섰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앞서 국정원은 탈북자 출신 서울시 공무원으로 있던 유우성씨의 간첩 혐의 입증을 위해 북-중 출입경(국)기록 등 조작된 증거를 이문성, 이시원 검사를 통해 항소심 법정에 제출했다가 탄로났고, 유씨는 간첩혐의에 대해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지난 2013년 국정원 관련 의혹 사건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장(오른쪽)과 박형철 부팀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 2013년 국정원 관련 의혹 사건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장(오른쪽)과 박형철 부팀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두 팀 모두 검찰 내부에서 징계를 받았지만 검사로서의 생명이 박탈된 수사팀은 오히려 징계 수위가 낮았던 쪽이었다. 우선 윤 검사는 정직 1개월, 박 검사는 감봉 1개월이었다. 윤 검사에 대한 법무부의 징계사유는 2013년 10월 서울중앙지검장에게 보고 및 결재 없이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체포영장 및 압수수색영장을 청구 및 집행하고, 직무배제명령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공직선거법위반 사건의 혐의를 추가해서 공소장변경신청을 한 것이다. 박 검사 역시 같은 취지로 징계 처분을 받았다.

이문성, 이시원 검사는 간첩 사건의 증거검증을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법무부에서 각각 정직 1개월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두 검사에 대해 “국정원의 증거 조작 사실에 대해 알았다고 볼만한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대드는 검사보다 무능한 검사가 낫다?

두 수사팀에 대한 처우가 엇갈리는 데에는 수사능력보다 위계질서 붕괴에 대한 위기감을 더 민감하게 느끼는 조직문화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A 검사는 “윤 검사든 박 검사든 개인적 성향으로는 보수에 가깝지 야당 성향은 절대 아니다”라며 “인사가 이렇게 나는 건 좌우 문제가 아니라 조직 내 반항, 그게 제일 컸다고 본다”고 말했다. 수도권의 다른 평검사도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은 검찰 내부 지시를 따르지 않고 위계질서를 해한 측면이 있어서 정치적 인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3년 11월 대검 감찰본부가 결정한 윤 전 팀장에 대한 처분은 정직 3개월이었다. 하지만 다음달 검찰 외부 인사가 함께 참여하는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는 정직 1개월 처분을 내렸다. 검찰 내부의 ‘회초리’가 더 매서웠던 셈이다.

윤 검사는 그 해 국정감사에서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을 찾아가 체포영장 청구 등을 설득했으나 ‘야당 도와줄 일 있느냐’며 사실상 수사를 막는 답변을 들었다고 폭로했었다. 윤 검사는 징계과정에서도 이례적으로 변호사를 통해 ▦체포 및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하지 말라는 중앙지검장의 지시는 위법, 부당한 명령이므로 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은 징계사유가 아니며 ▦공소장변경에 대해서는 중앙지검장의 사전승인을 받았다고 정면 반박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반면 이문성, 이시원 검사가 국정원의 조작된 증거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것은 기본적인 수사능력의 문제인데도 오히려 너그럽게 받아들여진다. 한 간부급 검사는 “국정원의 수사 밀행주의가 얼마나 심한데, (조작된 증거라도) 외교문서로 가져오면 믿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이문성 이시원 검사가 조작사실을 몰랐던 것은) 당연히 이해해 줘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의구심은 여전하다. 특히 지난 7일 증거조작 혐의로 기소된 국정원 직원의 항소심에서 변호인은 “(유우성 사건의) 공판담당 검사였던 이문성 검사는 수사 당시에 국정원에 파견된 수사 지도관이기도 했기 때문에 관련 수사 자료를 전부 공유해 내용을 알고 있었다”며 “검사의 강요에 의해 (증거조작이) 진행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게다가 유씨의 간첩혐의 재판에 관여했던 두 검사는 이미 1심 재판에서 국정원이 제출한 허위 증거로 한차례 곤욕을 치렀기 때문에 항소심에서도 증거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결국 정권의 입맛에 맞는 수사를 했느냐 여부가 관건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향응으로 징계받은 검사보다 더해

국정원 수사팀보다 더 무거운 징계를 당하고도 더 빨리 지방고검을 벗어난 사례는 또 있다. 김모 검사는 2009년 3, 4월 부산에서 형사사건 피의자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 50만원 상당의 식사를 대접받은 후 수사담당 검사에게 ‘당사자가 억울하다니 기록을 잘 살펴 달라’고 청탁해 정직 3개월 처분을 받았다. 김 검사는 비위 사실이 드러난 후 대구고검으로 좌천성 인사를 받았다가 2012년 인사에서 서울고검으로 발령이 났다. 김 검사와 함께 향응을 받았던 정모 검사 역시 감봉 1개월 처분을 받았지만 역시 대전고검을 거쳐 2011년 하반기 서울고검으로 왔다.

대전고검에서 부산고검으로 발령이 난 박형철 검사는 사표를 낸 이유로 “가족들과 떨어져 있는 것이 힘들다”고 지인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만약 박 검사가 이번에 부산고검이 아닌 서울고검으로 발령이 났다면 그는 사표를 내지 않았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비위 검사들도 오는 서울고검을 박 검사는 못 온 것이다.

서울 한 지검의 B 검사는 공안검사로서 박 검사의 마음고생도 전했다. B 검사는“국정원 수사 당시에 공안통으로 분류되는 박 부장검사가 고민을 많이 했던 걸로 안다”며 “대공수사뿐 아니라 공안수사에서 국정원과 협력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권력형비리 수사가 전공인 특수통 출신의 윤석열 검사와 박 검사가 한배를 탄 것에 대해서 공안통 검사들 내부에서 못마땅하게 여기는 시선도 있었다고 했다.

남아 있는 윤석열 검사에 대한 안타까움도 크다. ‘항명’에 따른 대가로 박 검사와 함께 징계를 받았던 윤 검사는 이번 인사에서 대구고검에서 대전고검으로 옮겼다.

윤 검사는 박 검사의 사표를 만류했으나 막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윤 검사 또한 버티지 못하고 사표를 내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으나, 윤 검사는 주변에 “이 와중에 나까지 나가면 어쩌겠나. 나라도 남아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 재판에서 수사팀) 후배들이 싸우는 것을 지켜봐 줘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원일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손현성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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