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출신 이슬람 페미니스트 파테마 메르니시(Fatema Mernissi)는 이슬람 남성 권력의 억압과 서구 주류 페미니즘의 편견, 이슬람 여성들의 왜곡된 자의식과 동시에 맞서며 이슬람 페미니즘의 기틀을 닦았다. 사진은 2004년 에라스무스 상 수상 연설 장면. The Erasmus Foundation.

‘베일(veil)’은 무슬림 여성들이 두르는 부르카 차도르 니잡 히잡 알 아미라를 뭉뚱그려 가리키는 말이다. 이슬람 여성 억압의 시각적 상징으로도 흔히 쓰인다. 2010년 프랑스 정부가 EU국가 최초로 공공장소 베일 금지법을 제정한 것은, 한국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시위 복면 금지법처럼, 사실 천을 두르는 행위를 금하자는 것만은 아니었다.

이어 시작된 ‘베일 논쟁’은 그 자체로써 하나의 성과였다. 7세기 이슬람 이전의 베드윈 문화와 전통, 기본권인 종교와 신체의 자유, 프랑스가 자랑해온 관용의 정신이 베일 변론대에 놓였다. 하지만 법은 이듬해 3월 시행됐다. 2년 뒤 프랑스 통합고등위원회(HCI)는 ‘대학 내 베일 금지 권고안’까지 내놨다.

그 무렵 비영리연구단체인 국제전략지정학회가 이슬람 페미니스트들의 베일에 대한 에세이 특집을 기획했다. 미국인 아미나 와두드(Amina Wadud, 1952~)는 “과도한 논란 자체가 짜증스럽다”고 썼다. 그는 “히잡을 여성에 대한 남성의 성적 억압의 상징으로 삼는 건 페미니즘에 도움을 주기보다 여성의 성적 단순화를 강화한다”고, “지나친 단순화이고 역겨운 스테레오타입의 하나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북아프리카계 미국인인 그는 펜실베이니아대 재학시절인 72년 이슬람으로 개종해 이름(본명은 메리 티슬리ㆍMary Teasley)까지 바꾼 뒤, 종교적 의무여서가 아니라 사적인 편의로 히잡을 두른다고 말해온 이다. “히잡을 쓰면 피억압자이고 안 쓰면 자유인인가.(…) 45인치 길이의 천 하나로 천국과 지옥이 나뉜다니, 그 발상이 놀랍지 않은가”(Geostategic and Geopolitical studies institute, 2013.3.14)

저 특집의 첫 에세이는 파테마 메르니시(Fatema Mernissi)의 글이었다. 그는 베일이 무함마드와 쿠란의 뜻과 달리 여성을 대중 정치와 신앙으로부터 분리ㆍ배제하는 주요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베일은 이슬람 남성 지배권력이 사회구조ㆍ권력 구조를 지탱해온 수많은 수단과 장치 가운데 하나일 뿐이며 “이슬람 페미니즘은 ‘베일’ 이슈를 넘어서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어디서나 여성의 법적 사회적 평등은 사회경제적 구조와 세속주의, 차이에 대한 법적 관용, 자유의 승인, 사적 윤리와 사적 판단 능력에 대한 존중 등과 연관된 문제다.(…) 단순히 ‘베일’만 갖고 씨름하는 건 어떠한 변화도 가져올 수 없다.”

니캅을 두른 이슬람 여성들. 원색의 양산과 눈만 열린 검정색 베일이 대조적이다. 픽사베이

해묵은 베일 논란을 장황하게 옮긴 건, 뻔해 보이는 ‘사실’ 뒤에도 말 많은 사정이 있다는 걸 알자는 취지다. 이슬람 페미니즘이 그런 듯하다. 무함마드와 쿠란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디스(Hadithㆍ무함마드 언행록)는 쿠란과 같은가 다른가. 아니 ‘이슬람 페미니즘’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할 수 있느냐는 문제에서부터 이견이 없지 않다. 국가ㆍ사회 권력의 원천인 이슬람 종교가 여성 억압을 전제한다면 그 틀 안에서의 페미니즘이란 태생적으로 패배주의와 타협주의의 소산일 테니 말이다.

파테마 메르니시는 이슬람 페미니즘의 저 험난한 학문적ㆍ실천적 영역을 바닥서부터 일구며 무슬림 여성에게 드리운 온갖 차원의 ‘베일’들과 드잡이해 온 페미니스트였다. 무슬림 집안에서 태어나 하렘(Harem)에서 자랐고, 유럽과 미국서 공부한 뒤 다시 무슬림 사회로 복귀한 그는 서구 비무슬림 페미니스트들과 무슬림 남성권력, 그에게 오리엔탈리즘의 혐의를 덮씌우려는 무슬림 여성 사회를 동시에 상대하며 이슬람 페미니즘의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했다. 그가 11월 30일 별세했다. 향년 75세.

그는 1940년 9월 27일 모로코 옛 수도 페즈(Fez)의 한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다. 선친은 딸의 유학을 허락할 만큼 열린 이였지만 집에는 여성들의 감옥인 하렘이 있었다. 메르니시는 외조모와 어머니, 이혼당하거나 사별한 친척 여성들 속에서 성장했다.

93년 NPR 인터뷰에서 그는 유년시절의 기억을 들려준 적이 있다. “집에서 어머니는 하이크(haikㆍ얼굴 일부만 드러내는 7m 길이의 흰색 천 원피스)를 거부하고 젤라바(djellabaㆍ로브 형태의 남성복)를 입곤 했어요. 소매가 따로 있기 때문에 활동하기 편해서였는데, 그건 서구 전통사회에서 여성이 남자 바지를 입는 것만큼이나 엄청난 도전이었어요.”그런 어머니조차 (남자 친척을 동반하지 않은) 바깥 출입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다른 인터뷰에서 그는 이런 기억도 전했다. “이른 새벽 인적 없는 거리를 걸어볼 수만 있다면…. 그 무렵 도시의 색깔은 푸르스름하겠지? 아니면 노을 질 때처럼 불그레할까?” 어머니의 탄식 같은 물음에 하렘의 어른들 그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고 그는 말했다.(NYT, 2015.12.9)

그의 유년인 1940년대는 터키와 이집트의 이슬람 개혁운동이 한창이던 때였다. 남자들이 깜빡 잊고 라디오 캐비닛이라도 열어둔 때면 하렘의 어른들은 방송을 몰래 들으며 새로운 변화의 기대와 갈망에 들뜨곤 했다고 한다. 모로코 역시 프랑스 식민지에 맞선 민족주의 운동으로 진보적 개혁 열기가 달아오르던 때였다. 메르니시는 무슬림 초등학교를 나와 프랑스령의 한 여학교를 다녔다. 그가 수도 라바트의 모함메드V(Mohammed V) 대학에서 정치학 학위를 딴 뒤 장학생으로 뽑혀 프랑스 소르본느에서 유학하고, 미국 매사추세츠 브랜다이스(Brandeis) 대학에서 사회학으로 박사 학위를 딴 데는 그런 분위기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75년 단행본으로 출간된 그의 첫 책 ‘베일을 넘어서(Beyond the Veil: Male-Female Dynamics in Modern Muslim Society’는 박사학위 논문을 손 본 거였다.

“서구 문화의 성 불평등은 여성의 생물학적 열등성의 믿음에 근거한다.(…) 반면에 이슬람의 불평등 시스템은 여성이 강력하고 위험한 존재라는 가정에서 비롯한다. 모든 성 억압 제도들(일부다처제, 강제이혼ㆍrepudiation, 성적 격리 등)은 여성의 힘을 억누르려는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다.(…) 서구 여성 해방이 여성이 주축이 돼 남성과의 평등을 이루려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 무슬림 국가의 페미니즘은 남녀가 함께 양성의 평등적 관계성을 복원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책 서문 발췌, resetdoc.org) 그의 입장은 무함마드 시대 무슬림 사회에는 여성 억압이 없었다는 점을 전제한 거였고, 남성 권력자들에 의해 왜곡된 하디스와 샤리아(Shariaㆍ이슬람 율법)의 지배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거였다. 책에서 그는 무함마드 사후 25년여 후부터 정리되기 시작한 하디스의 서술 주체(남성)와 맥락, 왜곡 사례 등을 쿠란과 비판적으로 대조했다고 한다. 비무슬림 사회에 만연한 이상적 여성관에 대해서도 그는 “말 없고,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여성”은 진짜 이슬람과는 무관하며, 남성 중심의 이슬람 공동체(Ulama), 즉 남성 권력자들이 가부장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쿠란 텍스트를 조작하고 왜곡한 결과라고 주장했다.(oxfordislamicstudies.com, Mernissi Fatima)

범상해 보이는 그의 주장은 실은 가공할 내파(內破)의 전략과 수단을 담고 있었다. 그는 무함마드와 쿠란의 정통성 위에서 이슬람 현실을 비판함으로써 이슬람 페미니즘의 독자적 영역을 구축했고 이슬람 현실 권력과 ‘서양물 든 여성 지식인’이라는 젠더 대중의 편견에 맞설 교두보를 마련했다. 그는 후속 연구에서도, 남성 권력과의 싸움에서도, 대중들과의 대화에서도 저 입장 혹은 전략을 평생 견지했다. 메르니시는 박사 학위를 따자마자 조국으로 돌아와 모교인 모함메드 V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슬람 페미니즘 로고.

그의 주저 가운데 하나인 ‘베일과 남성 엘리트(The Veil and the Male Elite: A Feminist Interpretation of Women’s Right in Islam. 1991)’에서 그는 “신성한 텍스트의 왜곡은 그 자체로서 문제일 뿐 아니라 무슬림 사회 권력의 구조 자체를 왜곡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썼다. “7세기 이후 모든 권력-종교와 정치권력, 경제적 이해가 (여성 지위와 권리를 둘러싼) 전통의 조작에 동원되었다.”(NYT, 위 기사) 그는 베일의 하나로 여성의 물리적 공간 억압의 실체이자 상징인 하렘을 꼽으며 그곳은 서구인이 상상하듯 술탄이 관장하는 성적 쾌락의 공간이 아니라 온 세대 집안 여성들이 격리된 채 지내는 따분하고 지루한 부르주아 공간이라고 썼다. 그는 이슬람이 여성을 공간적으로 억압하는 것과 달리 서구의 남성들은 ‘시간적 통제’를 통해 사실상의 하렘을 운영해 왔다고 주장했다. “여성은 14살처럼 보여야 한다. 만일 50살이나 더 심하게 60살쯤으로 보이면 그녀는 끝이다(beyond the pale). 소녀를 미의 이상형으로 상정함으로써 남성은 성숙한 여성을 보이지 않는 존재로 치부한다.”

하렘 시절의 체험을 녹여 강하고 개성 있는 여러 여성들을 등장시킨 자전적 소설‘월경의 꿈(Dreams of Trespass, 1994)’(resetdoc.org, 위 글)이나 무슬림 계층별 직업별 여성 11명의 인터뷰집 ‘일상의 투쟁(Doing Daily Battle: Interviews with Moroccan Women, 1984)’ 등은 내부의 자의식과 외부의 편견을 동시에 겨냥한 책이었다. 1988년 선거로 파키스탄 수상이 된 베나지르 부토(Benazir Bhutto)에 대해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반발하던 무렵 그는 ‘이슬람의 잊힌 여왕들(The Forgotton Queens of Islam’을 출간했다. 책에서 그는 8세기 이후 무슬림 국가의 여성 정치 권력자들, 예컨대 인도의 술탄 라지아(Razia), 몰디브와 인도네시아의 여왕 등등을 일일이 깨워 부토 뒤에 서게 했다. ‘이슬람과 민주주의(Islam & Democracy: Fear of the Modern World, 1992)’는 걸프전 직후 이슬람 사회의 민주주의 가능성에 대한 논란에 맞서 쓴 책이었다고 한다. 거기서 메르니시는 “서구 사회가 지닌 무슬림 신화와 이슬람 근본주의의 뿌리를 파괴하기 위해서는 무슬림 세계 스스로 민주주의를 복원하고 제 가치와 전망을 내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핵심이 물론 여성 인권의 복원이었다.

메르니시는 “글쓰기는 기도의 오래된 형식 중 하나”라고 말했다. Goodreads.com

파키스탄 일간지 ‘데일리 타임스’는 부고 기사에서 “글쓰기는 기도의 오래된 형식 중 하나”라는 그의 말을 인용했다. “글을 쓴다는 건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 그들 안에 선량함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고, 그들의 관대함과 더 나아지려는 희망을 일깨울 수 있다는 믿음을 실천하는 행위이다.” ‘월경의 꿈’에는 하렘의 여성들이 춤을 추는 에피소드가 등장하는데, 그 중 가장 부드러운 춤사위를 자랑하던 ‘미나’라는 여인에게 화자가 요령을 묻는 장면이 나오는 모양이다. 미나는 “저 여인들은 그들의 삶에 화가 나있고, 그 분노의 인질이 돼있어. 그건 슬픈 운명이지. (비록 여기는 감옥이지만) 더 열악한 감옥은 스스로 만들어낸 감옥이야”라고 답한다.(goodreads.com, Vatema Mernissi 항목) 저 구절은 뉴욕타임스에 소개한 어머니의 일화, 인적 없는 새벽의 빛깔을 동경하는 하렘 여인들의 영적ㆍ지적 노마디즘과 해방의 열망을 떠올리며 썼을지 모른다. 그리고, 스스로 만든 감옥에는 갇히지 않겠다는 그 각오가 극지의 해방구라 할 만한 이슬람 페미니즘의 터전을 일군 메르니시의 낙관과 믿음의 밑천이었을 것이다.

에세이에 썼듯이 그는 부르카를 비롯한 모든 베일을-남성 권력이 금지한 모든 금기와 억압을 거부했다. NPR 인터뷰에서 그는 딱 두 가지를 원한다고, 모스크와 위성(the satellite)이라고 말했다. 그는 흔들림 없이 기도(페미니즘 글쓰기)했고, ‘위성(방송)’으로 기도를 전하고자 했다. ‘월경의 꿈’의 이런 구절이 그 예일 것이다. “아름다움은 피부에 있어! 잘 가꾸고, 잘 씻고, 오일도 바르고, 향수도 뿌리고,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예쁜 옷을 입어서 네가 여왕이 된 듯 느낄 수 있어야 해. 만일 세상이 너를 모질게 대하면 네 살결을 어루만지면서 맞서. 피부는 정치적이야(Skin is Political). 아니라면 왜 이맘들이 감추라고 하겠니?”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