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 마지막 방송을 앞둔 ‘응답하라 1988’을 둘러싸고 시청자들은 여주인공 덕선이 누구랑 결혼할 것인지를 알아내기에 혈안이다.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정환의 가족은 주택복권에 당첨되면서 지독한 가난에서 탈출, 집도 장만하고 전자대리점도 열어 이웃의 부러움을 샀다. 어린 시절 친척 어르신들이 주택복권을 들고 TV 앞에 앉아 번호를 맞추던 모습을 흔히 목격했지만, 여태껏 주변에서 1등에 당첨된 사람은 없었다. 즉석복권을 긁어 자동차를 받은 경우는 본 적이 있다.
▦ 미국에서는 ‘파워볼’이 화제다. 지난해 11월 이후 당첨자가 없어 당첨금이 누적되다 13일에야 당첨자가 나왔다. 1등 당첨금은 최대 15억 달러(1조8,000억원)다. 이 바람에 국경 바깥 캐나다 등지에서도 수천 명이 국경을 넘어 복권을 사러 미국으로 몰려드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우리나라 로또도 평균 당첨금이 20억원이다. 이 정도라면 인생을 극적으로 역전시킬 수 있겠다. 불황이거나 실업률이 높을수록 콘돔과 복권 판매가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 최근 블룸버그가 선정한 세계 400대 부호에 포함된 한국인 5명이 모두 재벌 2, 3세였다. 일본은 5명 모두 창업가였고, 미국은 125명 중 89명이 자수성가했다. 우리나라에 창업재벌보다 상속재벌이 많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 부모에게 받은 상속ㆍ증여 비중이 20%대였으나 2000년대에는 40%대로 올라갔다. 이를 두고 ‘능력주의(Meritocracy)의 실종’이라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부자와 빈자 인생의 출발선이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된 것이다.
▦ 우리 사회에 수저론이 유행이지만 영어에도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다(born with a silver spoon in mouth)’는 말이 있다. 최근 들어 가족 세습적 자본주의 (patrimonial capitalism)가 심화했다는 지적이 많다. 토마 피케티는 “세습 자본주의의 특징이 부와 소득의 끔찍한 불평등”이라고 했다. 문제는 갈수록 이런 경향이 심해진다는 것이다. 부모의 경제력이 스펙과 취업 여부를 가르는 세상이 됐다. 특히 지금처럼 저성장이 계속될수록 불평등은 커지기 마련이다. 계층상승의 희망이 사라져 마지막으로 로또에라도 기대려는 세태가 서글프다. 성장도 좋지만 분배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할 때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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