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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도자기]황색자기가 유명한 홍치·정덕요(1487∼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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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도자기]황색자기가 유명한 홍치·정덕요(1487∼1521)

입력
2016.01.15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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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홍치어요홍저황룡문반'은 22억7,800만원에 거래된 명품이다.

홍치제시기 유명한 자기는 '황지청화'를 꼽는다. 황지청화접시가 런던 빅토리아&알버트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이해를 돕기위해 홍치·정덕제의 시대를 간단히 살펴보면, 효종홍치제의 시대는 비교적 평온했다. 홍치중흥이라 불리울만큼 정국이 안정되었다.

중국 역대 황제들의 골치였던 북쪽 기마민족들과 대외관계에서 우호관계를 유지했다. 북방의 문제가 사라지면서 안정적이고 평온한 시대가 이어졌다. 또 내부적으로는 환관들의 전횡을 견재하고 간신들을 낙향시켰으며, 커다란 토목공사가 없어서 백성들이 비교적 편안한 시기로 평가된다.

그러나 아들 무종 정덕제는 황제가 된 뒤에 미녀를 후궁으로 삼아 쾌락을 즐기는 음탕한 생활에 빠졌다. 뿐만아니라 환관을 사랑하고 라마교를 광신했으며, 유희를 좋아하여 국비를 낭비하였다.

홍치·정덕의 2대는 재질과 양식면에서 성화시기의 연장으로 볼수 있다. 홍치 시기에는 문양이나 기형 모두 이전 시기와 유사하여 접시와 발(鉢) 이외에는 특이한 것을 찾아볼 수 없다. 홍치요의 제품으로는 황유가 시유된 황유자기가 유명하다. 황색은 황제를 상징하는 색이므로 일부학자는 당시 궁정의 수요는 주로 황색유자기로 충족시켜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당시 황유자기가 각별한 사랑을 받은 것을 보여준다.

황유의 응용으로 성화 시기부터 홍치 정덕에 걸쳐 황지청화라 일컫는 작품이 상당수 만들어 지게 되는데 이것은 청화 청화백자위에 저화도의 황유를 칠해 다시 굽는 것이다.

남포원저 '경덕진도록'을 살펴보면 정요는 정덕연간의 어기창(御器廠)자기로서 점토는 세밀하고 후박하여 성질이 같지 않고, 색 역시 청(靑) 채(彩)로 나뉘며 제홍만이 특히 아름답다.

이후 당나라가 운남을 다스릴 때 외국에서 획득한 회청은 가격이 황금의 배가 된다. 그것이 그릇을 굽는데 꼭 알맞다는 것을 알고 사용하도록 명했다. 색이 예스럽고 화려하여 정요 청화는 고급품이 많았다. 회청을 고찰해 보면 진한 색을 중히 여기고 그 당시 창공이 간리를 위하여 방종하여 민요에 팔았다. 가정연간에 이르러 읍령 주경현이 조제 방법을 강구하여 그 폐해가 줄었다.

정덕무렵에 황지녹채 기법도 유행했다. 이 장식은 백지녹채 그릇의 백지부분에 황유를 칠해 넣고 녹채와 똑같이 저화도로 소성한 것으로, 매끈한 황색몸채와 빛나는 녹색의 문양대비가 한층 화려한 분위기를 낸다.

첸쩡샤는 '중한고미술협회'이사로 1,000여점의 중국도자기를 두루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CC'는 중국도자기(Chinese ceramics)를 뜻한다.

채준 기자 doorian@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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