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지역적인)과 글로벌(세계적인)을 나눠서 생각하는 건 이미 현실과 맞지 않습니다. 미국 금리나 시리아 난민이 그 나라만의 문제로 끝나는 게 아니듯 로컬하게만 살 수 있는 사람도, 글로벌하게만 살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강남순 미국 텍사스크리스천대 브라이트신학대학원 교수는 ‘21세기에 산다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철학과 신학, 사회학, 정치학 등 다양한 관점에서 코즈모폴리터니즘을 분석해 주목 받고 있는 강 교수는 지난달 ‘코즈모폴리터니즘과 종교’(새물결플러스 발행) 출간에 맞춰 한국을 찾았다. 코즈모폴리터니즘은 특정 국가나 지역, 민족 같은 협소하고 배타적인 구분을 초월해 ‘우주(cosmos)의 시민’이라고 여기는 의식을 가리킨다.
강 교수가 코즈모폴리터니즘에 관심을 갖게 된 여러 이유 중 하나는 한국을 떠나 독일, 영국, 미국에서 살면서 ‘당신은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 느꼈던 당혹감이었다. 한국이라는 지리적 공간으로 자신을 규정하는 것이 탐탁지 않았던 강 교수는 ‘초경계적 의식’을 삶의 화두로 삼아왔다. 그는 코즈모폴리터니즘이 자신이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씨름하던 물음들과 연결된다는 것을 경험했고 정체성의 문제, 연대의 문제, 성별ㆍ인종ㆍ종교ㆍ국적 등의 경계를 넘어서는 연민과 환대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강하게 끌렸다고 했다.
‘코즈모폴리터니즘과 종교’의 부제는 ‘21세기 영구적 평화를 찾아서’다. 강 교수는 21세기에 세계가 직면한 이슈 중 하나인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답을 코즈모폴리터니즘에서 찾는다. 신학적 관점에서 코즈모폴리터니즘에 대해 논의한다는 점에서 색다른 시도다. 그는 “종교의 중요한 과제는 타자에 대한 책임성”이라고 말했다. “성서에서도 예수는 종교의 교리에 대해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자신을 사랑하고 타자를 사랑하고 신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긴밀하게 연관돼 있는지 강조했습니다. 예수의 가르침에는 코즈모폴리터니즘의 가치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예수는 타자에 대한 무조건적 책임과 환대를 가르쳤습니다.”
강 교수는 근본주의에 빠져 혐오와 차별, 폭력을 양산하는 종교를 나쁜 종교라고 경계한다. 그는 “보다 정의롭고 평등한 세계, 타자를 포용하고 함께 살아가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힘쓰는 것이 종교의 올바른 모습”이라며 “신을 믿는다는 건 결국 타자들과 함께 고통을 겪고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코즈모폴리터니즘 사상에선 인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 태양 아래 모두 똑같은 시민이기 때문에 서로를 동료로 여기며 무조건적 환대를 베풀어야 한다. 이주민에 배타적인 한국 사회에 강 교수는 일침을 놓았다. “한국 사회는 동질성의 연대만 잘할 뿐 너무나 배타적입니다. 타자를 포용하고 책임성을 갖는 게 성숙한 사회인데 우리 사회는 너무나 미성숙해요.”
강남순 교수는 코즈모폴리터니즘 이론을 배우는 것 자체가 사회를 바꾸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모국어로 쓰고 미국 시민으로서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당신들이 얼마나 큰 특권을 누리고 있는지 늘 가르칩니다. 특권을 누리는 만큼 더 큰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코즈모폴리터니즘을 가르치는 것도 이러한 책임감을 어떻게 확장시킬 수 있을까, 세계적인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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