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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길 위의 이야기] 칼

입력
2016.01.15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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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를 썰다가 따끔했다. 검지를 입에 넣어 빨았다. 비릿한 맛. 퍼뜩, 마음 새듯 피 샌다, 란 말을 읊조렸다. 도마 위의 칼을 봤다. 피 보게 해놓고선 배를 드러내고 누운 모습이 잠깐 얄미웠다. 끝 날만 봐선 독이 잔뜩 오른 사람의 찢어진 눈매 같다. 그럼에도 손잡이 쪽으로 오면서 둥그렇게 휘어진 곡선은 우아하기도 하다. 쇠를 갈면 저토록 부드러운 곡선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게 짐짓 놀랍다. 우아함과 뾰족함의 혼재. 혹은 살기와 예의의 복합체. 인간의 감정에도 이런 이중적인 요소들은 드물지 않다. 대표적으로 사랑. 마음의 온도가 상승하고 몸이 데워지는 온유한 감정이 자칫 오해와 일방의 편향으로 치우치면 분노와 저주로 차갑게 뒤집어지기 일쑤. 그렇게 벌어지는 칼부림을 현실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자기 살겠다고 손잡이만 꽉 쥐면 결국 날이 더 팽팽하게 조여 상대를 위협하게 된다. 칼을 건넬 땐 칼등을 손에 쥐고 손잡이를 상대에게 돌려 조신하게 건네야 하는 법. 그랬을 때 칼은 무기가 아니라, 상대로 하여금 스스로를 보호하게 만드는 내밀한 협약의 악기가 된다. 그러면서 쌍방의 신뢰가 폭넓게 확인될 수 있다. 칼을 본다. 지금 보니, 둥그런 배 모양이 물고기를 닮았다. 뾰족한 끝은 본디 무슨 할 말이 있는데 그걸 못 뱉어서 응결된 주둥이일까. 마음의 심해에 숨긴 말들. 더는 그것으로 너를 찌르고 싶지 않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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