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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은 있는데 ‘집옷’은 없나요 “라운지웨어”

입력
2016.01.1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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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복과 외출복의 경계가 사라진다. 집 안에서도 스타일리시하고 싶은 욕구는 잠옷과 실내복을 외출복처럼 변형시켰다. 돌체앤가바나의 라운지웨어.
실내복과 외출복의 경계가 사라진다. 집 안에서도 스타일리시하고 싶은 욕구는 잠옷과 실내복을 외출복처럼 변형시켰다. 돌체앤가바나의 라운지웨어.

목이 한껏 늘어났거나 구멍이 난 면 티셔츠. 아니면 김치찌개나 카레를 쏟았던 자국이 지워지지 않는 맨투맨티(안쪽면에 보풀이 나 있는 도톰한 라운드 티). 신경을 좀 쓴다면, 한 벌로 잠옷과 실내복과 외출복과 운동복의 기능을 집대성할 수 있는 ‘츄리닝’ 정도. 집에서는 응당 그런 옷을 입는 것 아닌가?

아니라고 한다. 집에서도 세련되고 스타일리시한 실내복, 편안하지만 부끄럽지 않은 패션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집밥의 열풍이 불었고, 집 꾸미기가 취미활동의 상위를 차지하는 시대가 됐다. 맛집 탐방 대신 ‘킨포크 스타일’의 소박하지만 트렌디한 홈파티가 대세다. 집은 잠깐 머무는 숙식의 공간이 아니라 내면의 평화와 휴식, 치유를 위한 가장 중요한 공간으로 그 위상이 급격히 높아졌다. 집밥뿐 아니라 ‘집옷’도 중요해진 것. 더군다나 현재는 삶의 화보화를 강제하는 SNS의 시대다. 인스타그램의 뷰파인더는 24시간 꺼지지 않고, 더 이상 구멍 난 티셔츠는 입고 싶지가 않다.

영국 브랜드 허쉬의 라운지웨어.
영국 브랜드 허쉬의 라운지웨어.

1마일 이내 어디든 간다 ‘원마일웨어’

실내에서 편안하게 입는 옷을 일컫는 라운지웨어는 홈웨어, 룸웨어, 슬립웨어, 나이트웨어를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가족 외에는 누구한테도 보여줄 일이 없다는 이유로 걸레 바로 전 단계의 옷들이 이 용처로 변환되곤 했지만,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이 옷차림으로도 누군가를 만나지 않을 도리가 없다. 택배도 가지러 가야 하고, 아이 데리러 유치원에도 가야 한다. 그래서 등장한 새로운 용어가 반경 1마일(1.6㎞) 이내는 어디든 입고 돌아다녀도 무방한 ‘원마일웨어’다. 동네를 어슬렁거리다 누구를 만나도 부끄럽지 않은 차림새를 말한다. 운동복과 외출복을 결합시킨 애슬레저룩 열풍도 같은 맥락에 있다.

H&M의 라운지웨어.
H&M의 라운지웨어.

패션이 발달한 선진국일수록 실내복의 카테고리가 발달해 있다는 게 통설이지만, 국내에서는 일본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무인양품, 패스트패션브랜드 유니클로 등이 상륙하면서 독립된 범주로 서서히 시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원마일웨어 스타일의 시작을 본격적으로 알린 건 2012년과 2013년에 출시돼 고전으로 자리잡은 유니클로의 릴랙싱 팬츠. 파자마와 칠부바지의 경계를 교묘히 흐린 이 바지는 올 봄·여름 시즌 드레스로도 라인이 확장된다. 유니클로 관계자는 “현대 사회가 더욱 빠르게 변화하고 치열해지는 만큼 몸과 마음을 힐링할 수 있는 휴식공간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는 추세”라며 “이에 따라 실내에서 착용하는 옷들도 외출복 못지않게 스타일리시한 디자인들이 각광받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 등장한 라운지웨어 전문 브랜드 멜트. 로브는 코트로도 손색 없다.
국내에 등장한 라운지웨어 전문 브랜드 멜트. 로브는 코트로도 손색 없다.

자라, H&M, 에잇세컨즈 같은 패스트패션브랜드나 자주 같은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에서만 찾아볼 수 있던 라운지웨어는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전문 브랜드까지 낳았다. 서울 합정동에 매장이 있는 디자이너 라운지웨어 브랜드 멜트의 이예지 대표는 “2014년 3월 런칭할 때만 해도 국내 시장에서는 슬립웨어나 라운지웨군이 별도의 패션 카테고리로 잡혀 있지 않았다”며 “전반적으로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열풍이 불기 시작해 서너 군데뿐이던 전문 브랜드들이 현재는 많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무모한 도전이었죠. 국내에서는 수요가 워낙 적어서 길게 보고 시작한 건데 생각하는 방향대로 라이프스타일 제품군이 형성됐어요. 매출도 매우 많이 상승했습니다.”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라운지웨어.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라운지웨어.

‘집옷’도 럭셔리하게… 급성장한 라운지웨어

라운지웨어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알렉산더 매퀸, 발렌티노, 베르사체, 스텔라 매카트니, 구찌 같은 럭셔리 브랜드들은 라운지웨어 카테고리를 대거 늘렸다.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진정한 럭셔리는 편안한 것’이라는 모토 아래 브랜드 특유의 편안하고 내추럴한 느낌을 한껏 살려 집에서도, 외출시에도 멋지게 소화할 수 있는 라운지웨어를 선보였다. 엠포리오 아르마니 언더웨어가 출시한 원마일웨어는 ‘츄리닝’이라 부르기에는 지나치게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디자인으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전년 동기 대비 22%나 매출이 증가해 동종 브랜드 중 가장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밴드 부분에 선명하게 새겨진 엠포리오 아르마니 로고에 가격은 티셔츠 6만9,000원, 하의류 9만9,000~15만9,000원으로 비슷한 레벨의 브랜드보다 싸다. 엠포리오 아르마니 언더웨어의 이순행 과장은 “소셜미디어의 영향으로 일상의 자연스런 모습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원마일웨어도 프리미엄 제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며 “자연스럽지만 어딘가 세련되고, 평범하지만 자신만의 멋을 드러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럭셔리 브랜드의 원마일웨어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엠포리오 아르마니 언더웨어의 라운지웨어.
엠포리오 아르마니 언더웨어의 라운지웨어.

영국 리서치 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라운지웨어는 2009~2014년 연평균 11%의 성장률을 보였다. 이 같은 흐름은 더욱 거세져 2014~2019년 추가 16%의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예측된다. 성장의 동력은 아시아와 중동, 아프리카에서의 수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주 ‘패션의 최신 지령: 대낮의 파자마’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돌보고 몸을 가꾸는 데 매우 많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며 ”휴식과 명상이 사람들 마음의 가장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럭셔리한 라운지웨어는 그에 대한 완벽한 대응품”이라고 보도했다.

올 블랙으로 시크하고 세련된 스타일을 보여준 지방시의 라운지웨어.
올 블랙으로 시크하고 세련된 스타일을 보여준 지방시의 라운지웨어.

누가 파자마를 잠옷이라 하는가

라운지웨어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유행 아이템은 파자마다. 잠잘 때 입는 잠옷 파자마가 아니다. 파자마 세트를 각기 셔츠와 팬츠로 재해석한 ‘파자마룩’은 이미 지난해부터 런웨이와 스트리트 모두를 석권했다. 파자마 위에 걸치는 가운인 로브도 코트와 카디건으로 변형돼 라운지웨어의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이동 반경 1마일을 훌쩍 뛰어넘어 출근복, 파티복으로까지 다용도 활용이 가능한 옷차림이다. 평범함 속에서 세련된 스타일을 추구하는 놈코어(노멀+하드코어) 트렌드의 강력한 자장 속에서 파생된 흐름이다.

편안할 뿐 아니라 여성스럽고 우아하며 시크하기까지 한 파자마룩은 올해도 그 도도한 물결을 이어갈 것 모양이다. 돌체앤가바나가 올 봄·여름 시즌을 겨냥해 내놓은 강렬한 프린트의 하늘하늘한 오버올, 셔츠, 재킷은 선보이자마자 파자마 수트의 정석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잔잔한 프린트와 파스텔 색조로 산뜻하면서도 내추럴한 분위기를 살린 스텔라 매카트니의 파자마룩과 풀어헤친 잠옷 가운을 우아하고 시크한 코트로 재해석해낸 지방시의 로브 코트는 요가웨어나 애슬레저룩으로는 도모하기 힘든 화려하고 포멀한 느낌을 자아낸다.

드리스 반 노튼의 라운지웨어.
드리스 반 노튼의 라운지웨어.

그러나 장삼이사인 우리에게 파자마룩은 여전히 런웨이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게 사실. 새로운 것을 하이에나처럼 찾아 헤매는 패션의 작위적 속성일 뿐이라고 매도할 수도 있다. 출근 복장으로 입고 나갔다가 인사과의 전화를 받거나 몽유병자로 오해 받을 것 같은 두려움을 떨치기 어렵다면, 약간의 변형을 시도해보자. 일단 상하의를 별도로, 순차적으로 활용해보는 게 좋다. 파자마 상의는 단지 버튼 셔츠나 블라우스의 좀 더 넉넉한 버전일 뿐이다. 일상의 패션 피플에게 가장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는 파자마셔츠는 타이트한 펜슬스커트 안에 집어넣어 입거나, 아랫단을 밖으로 빼서 입을 경우 커다란 벨트를 둘러 너풀거리는 품을 스타일리시하게 고정해준다. 파자마바지는 각 잡힌 블라우스나 재킷과 함께 입으면 좋다. 대신 신발은 벨벳 소재의 하이힐처럼 좀 드레시하게 신는다. 슬리퍼 타입은 금물. 옷의 소재는 실크나 사틴, 고급 면 등 럭셔리한 섬유들이 잘 어울린다. 패턴은 줄무늬든 꽃무늬든 크고 화려한 것이 좋지만 상하의 중 하나는 단정한 단색조로 반드시 대조의 미를 추구해야 한다. 큼직한 테디베어나 헬로키티 같은 아동용 패턴은 어떤 고급소재로도 해결이 안 되며, 시선을 집중시켜줄 보석류를 액세서리로 착용하면 고전적 우아함을 자아낼 수 있다.

파자마룩은 단지 실내복을 외출복의 영역으로 확장했다는 데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옷차림에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공존한다. 무엇보다도 파자마를 입고 바깥으로 나왔다는 것에서 풍기는 반항적 기운 자체로 그 옷차림은 패셔너블하다.

박선영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사진 각 브랜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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