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만 죽인 것이 아닙니다. 3대가 모여 잘 살던 우리 가족의 행복은 사건 당일 끝났습니다. 삶이 송두리째 뽑혔습니다.”
어머니는 떨린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하….’ 말을 꺼내는 것조차 고통스러운 듯 중간 중간 한숨을 토했다. 19년 전 이태원에서 불의의 살인사건으로 잃은 아들은 그 동안 어머니의 가슴에 묻혀 있었다. ‘이태원 살인사건’으로 숨진 조중필(당시 22세)의 어머니 이복수(74)씨가 1심 선고를 앞둔 마지막 심정을 재판장에게 토로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심규홍) 심리로 14일 열린 아더 존 패터슨(37)의 살인 혐의 10회 공판에서 이씨는 “74일만 지나면 (사건이 발생한 지) 만 19년입니다. 19년 전이나 지금이나 방청석에 앉아 재판을 보며 지켜보는 제 가슴이 어떤지 압니까”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지난해 10월 첫 공판준비기일부터 빠짐 없이 재판을 지켜봤다. 살인사건의 목격자에서 피고인으로 바뀐 패터슨을 10차례 이상 마주하며 가슴팍을 치고 숨을 골랐다. 이씨는 “(선고까지) 노심초사하며 지켜보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진실을 밝혀서 엄한 벌을 주시지요”라며 판사와 검사를 향해 말했다.
1997년 4월 3일 밤, 아들이 살해된 그날 이후 삶이 멈춰버린 이씨는 그간의 고통도 되짚었다. 이씨는 법정에서 ‘1998년 9월 30일’을 또렷이 기억했다. 그날 다리 힘이 풀렸다고 했다. 검찰이 재판에 넘긴 에드워드 리(37)가 파기환송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고 풀려난 날이다. 앞서 대법원은 1998년 4월 “(리가 범인이라는) 패터슨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며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 보냈다. 판결문을 보면 사실상 패터슨이 ‘진범’임이 시사됐다.
이씨 가족은 그 해 11월 패터슨을 고소했지만, 증거인멸 등으로 복역하다가 석 달 전 사면으로 풀려난 패터슨은 1999년 8월 검찰이 출국금지 연장을 하지 않을 틈을 타 미국으로 달아났다. 패터슨이 도피한 뒤 이씨와 가족들은 4년간 전국을 돌면서 ‘진범을 찾아달라’는 국민 서명을 받아 검찰과 법원에 냈다고 이씨는 회상했다. 사위가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을 데리고 사방으로 돌아다녔다고 했다. 그러다가 허리협착증으로 수술을 받았고, 지금도 무릎과 허리 통증으로 걷는 것도 힘든 상태다. 19년이나 진실이 공회전해 남은 재산도 없어 지인의 집에 얹혀 살고 있다고 이씨는 이날 털어놨다.
뼈아픈 실수를 한 검찰에 대해선 “검사님 믿으면 다 될 줄 알았는데 (19년 전) 수사 검사님 찾아갔을 때 제 앞에서 패터슨을 많이 두둔했습니다”라며 맺힌 한을 드러내기도 했다. 19년을 기다려 진범 여부를 가릴 1심 선고는 이르면 이달 말 나온다.
손현성기자 hshs@hankookilbo.com
신혜정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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