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단절된 일본… ‘주3일 근무’로 활로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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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단절된 일본… ‘주3일 근무’로 활로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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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1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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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안에서 도약을 꿈꾸다

2010년 NHK에서 방송된 다큐멘터리 ‘무연사회(無緣社會)’는 충격적인 고독사 사례들을 보여줘 화제가 됐다. 혈연마저 붕괴된 철저히 고립된 현실 속에서 관계 회복의 필요성을 환기시켰다.

비단 고독사의 문제가 아니라도 일본 사회 곳곳엔 무연사회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도쿄의 대표적인 사무실 밀집 지구인 지요다(千代田)구의 마루노우치(丸の內)에선 점심시간에 공원 벤치 등 야외에서 혼자 밥 먹는 사람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한국에선 ‘혼밥’이라 불리며 새로운 사회현상으로 주목 받고 있지만, 일본에선 흔한 일상이다. 식사시간 만이라도 관계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시간을 즐기고 싶다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 많은 청년들이 회사를 그만 두는 이유로 과도한 업무량과 함께 관계의 피로감을 꼽을 만큼 일본 사회에서 관계 스트레스는 심각한 수준이다.

일본 도쿄 마루노우치 거리에선 점심 시간에 혼자 도시락을 먹는 직장인을 어렵잖게 볼 수 있다.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하지만 최근 청년들 사이에선 오히려 관계를 통해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사례가 조금씩 늘고 있다. 이들이 추구하는 관계는 전통적인 조직문화에서 나타나는 경직된 관계가 아니라 느슨하고 수평적인, 상생을 지향하는 관계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도쿄 신주쿠(新宿)구에 위치한 슈토모(就とも)카페는 도쿄와 지방 학생들의 취업 격차를 없애자는 취지로 문을 열었다. 카페 운영자인 다케다 요코(武田陽子ㆍ32)는 “일본에선 대부분 혼자 취업 준비를 한다”며 “취업의 ‘슈(就)’와 친구라는 뜻의 ‘도모다치’를 합쳐 지은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친구들과 함께 여럿이 정보 교환도 하면서 취업을 준비하면 더 효율적이고 재미있겠다는 생각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지방 학생들에게 익숙지 않은 모의 면접이나 토론 연습도 여럿이 모여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는 게 슈토모 카페의 장점 중 하나다.

일본 도쿄의 슈토모카페에서 취업 준비 중인 대학생들. 슈토모카페 제공

이날도 아오모리(靑森)현과 미야기(宮城)현에서 온 학생들이 면접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케다는 “면접이 한창일 땐 60~70명이 모여있다”며 “이들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룹을 지어 면접과 토론 연습을 한다”고 말했다.

니트를 변화시킨 관계의 힘

일본에선 2004년 이후 니트(15~34세의 비경제활동 청년)가 갑자기 사회문제로 부각됐다. 당시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니트에 대해 ‘너무 풍요롭게 자라 일할 의욕이 없는 게으른 청년’이라고 인식했다. 빈곤이나 사회적 배제 문제는 논의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게을러서라기보다 질병ㆍ장애 등 신체적 제약이 있거나 저소득 가정의 저학력인 청년이어서 노동 시장에서 배제됐거나, 인간관계의 문제로 인해 사회에서 배제된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니트의 절반 가량은 왕따 등 인간관계 문제를 경험했다.

가나가와현 요코하마(橫濱)시에서 만난 청년들은 비영리단체의 도움으로 새로운 관계를 맺음으로써 수년간의 니트 생활에서 벗어나 사회에 복귀할 수 있었다.

다카오카 요시타카는 “대지진을 통해 봉사활동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주영기자

다카오카 요시타카(高岡 慶考ㆍ35)는 3ㆍ11 도호쿠 대지진을 계기로 히키코모리를 탈출했다. 2002년 와코대 경제경영학부를 졸업한 뒤 5년 정도 중식당 요리 보조로 일한 다카오카는 직장 동료와 사이가 멀어지면서 일을 관뒀다. 그는 “이후에 취업을 할까 생각도 했었지만, 부모님 도움을 받으니 금전적으로도 걱정이 없었고 딱히 하고 싶은 일도 없어 니트로 지냈다”며 “시간이 지날수록 부모님과의 대화도 단절되고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히키코모리 3년 차쯤 됐을 때 다카오카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고독감을 느꼈지만 막상 사회에 다시 나설 용기가 나진 않았다.

도호쿠 지진이 발생했을 때도 다카오카는 멍하니 TV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는 “TV속 모습이 현실이라고 믿을 수 없었다”고 했다. 지진 이후 처참한 피해 상황을 보면서 그는 “뭐라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나는 도대체 뭘 하고 있나”라는 생각에 1주일간 진행하는 봉사활동 캠프에 참가했다. 그리고 이 경험은 그의 삶을 180도 바꿔 놨다.

다카오카는 “피해지역 주민들과 만났을 때 그들은 ‘원래대로 되돌리자’는 게 아니라 ‘더 좋은 마을로 만들자’는 얘기를 했다”며 “긍정적으로 밝은 미래를 그리는 그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또 “히키코모리 땐 받는 것에 익숙해 있었는데, 봉사활동을 하면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행복했다”며 “이를 계기로 사회에서도 어엿한 일원으로 생활할 수 있겠다는 자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리고 또 하나 봉사활동 중에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었다. 20대 이후 한번도 생일을 챙겨본 적이 없다는 그는 “봉사활동 기간 중 마침 생일이 끼어있었는데, 지역 주민들과 동료들이 조촐한 파티를 열어줬다”며 “어릴 때부터 남들과 소통하거나 함께 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누군가와 함께 기쁨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행복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불과 1주일 간의 봉사활동 경험은 그를 사회적 기업으로 이끌었고, 현재 지진 피해지역을 지원하는 스태프로 일하고 있다. 관계가 작은 기적을 일궈낸 것이다.

미타 구니히코는 니트 청년들에게 “세상은 생각처럼 두렵기만 한 곳은 아니다”라며 “조금만 용기를 내서 집 밖으로 나오면 관계를 맺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주영기자

미타 구니히코(三田 邦彦ㆍ33)는 2000년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도, 취업도 포기한 채 니트 생활을 했다. 미타는 “10년간 니트 생활을 하면서 돈을 번 기간은 딱 3개월”이라며 “어떤 일에서도 흥미를 느낄 수가 없었다”고 했다. 미타를 사회로 돌려보낸 건 부모님의 단호한 대처와 그가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 시스템이었다. “30살 되기 전에 집에서 나가라”는 부모님 말씀에 인터넷을 뒤져 찾은 곳이 K2인터내셔널이라는 니트ㆍ히키코모리 자활 지원 사회적 기업이었다. 미타는 2010년 자활 프로그램에 등록해 일본과 호주의 시드니를 오가며 다코야키 가게에서 일했다. 물론 정부 기금으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돈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K2인터내셔널에서 운영하는 다코야키 가게에서 매달 20만엔(194만원)을 버는 어엿한 부점장으로 일하고 있다. 미타는 “K2인터내셔널의 프로그램이 없었다면 니트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직원들과 함께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이들과 함께 일하고 생활하는 삶이 재미있고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관계, 건조한 사회의 수분이 되다

“주 3일 근무하고 15만엔(145만5,000원)을 받는 채용 방식을 도입하면 과연 어떤 사람들이 지원할까 궁금했어요. 그런데 의외로 고학력자들이 많이 몰려 사회적으로도 파문이 일었죠.”

일본 게이오대 미디어 대학원에서 프로젝트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와카신 유준(若新 雄純)은, 일본 사회가 다양한 사고방식과 삶의 태도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다수의 실험적인 취업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경직된 일본의 조직문화가 많은 청년들을 사회에서 도태시키고, 관계를 삭막하게 만든다는 생각에서다.

적게 일하고 적은 급여를 받는 ‘비스타일 채용(느슨한 채용)’과 채용에 운세를 접목한 ‘베쓰루토’ 등이 그것이다. 지원자가 일하기 싫은 회사를 체크해 해당되는 회사를 제외한 후, 지원자의 생일 등으로 궁합을 봐서 가장 잘 맞는 회사에서 인턴십 등으로 일을 시작하는 베쓰루토에는 203명이 지원했는데, 이 중에는 와세다대 10명, 메이지대 6명, 도쿄대와 오사카대 각 4명, 교토대 3명 등 명문대 출신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또 나르시스트 채용(마니아적인 성격의 사람을 조직 문화에 맞게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취업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 역시 고학력층에 인기를 얻었다.

와카신 유준이 진행했던 취업 프로젝트인 ‘나르시스트 채용’의 홈페이지. 이 채용 방식엔 많은 고학력자들이 몰려 일본 사회에서 화제가 됐다.

와카신은 “일본은 특별히 부자가 아니어도 풍요롭게 살 수 있는 나라가 됐다”며 “이제 청년들은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에서 나아가 어떻게 하면 인생을 보람 있게 살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즉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일본 사회는 이들의 사고방식을 수용하지 못할 정도로 경직돼 있다. 그는 “일본 사회는 풍요롭지만 선택의 폭이 좁다”고 했다. 예를 들면 사회가 정해 놓은 시스템 속에서 취업하고,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하더라도 회사에 충성해야 한다. 지각하면 안 되고, 남의 눈에 띄면 안 된다. 이런 기준을 만족하지 못하면 문제가 있다고 낙인 찍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의욕도 떨어진다. 와카신은 “일본 청년들은 60점을 목표로 일한다”며 “더 잘한다고 보너스를 받는 것도 아니고, 60점을 밑돌면 혼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와카신 유준은 “청년세대와 윗 세대가 끊임없이 소통하지 않으면 청년 문제는 그들만의 문제로 고착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주영기자

와카신은 “이런 사회를 유연하게 만드는 게 내 프로젝트의 목표”라고 했다. 사회가 개개인의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때 훨씬 나은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을 거란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인터넷으로 150명의 니트들을 모아 그들 모두가 동등한 이사로 재직하는 ‘니트 주식회사’를 만들었다. 서로 아이디어를 모아 자기들 스스로 창의적인 사업을 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는 차원이었다. 모두가 얕보는 니트들이 세상이 정해놓은 방식이 아닌 그들만의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동기 부여를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들은 지난해 불과 92만엔(892만원)의 수익을 올리는 데 그쳤지만, 매스컴은 이들의 연합 자체에 주목했다. 현재 니트 주식회사 대표를 맡고 있는 나카 요스케(仲陽介ㆍ26)는 “니트 주식회사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의 개인 능력이나 창의력은 정규직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다”며 “일반 회사는 명령에 따르는 게 중요하지만, 니트들은 그런 삶을 원치 않기 때문에 취업하지 않을 뿐”이라고 말했다. 또 니트주식회사에 대해선 “수입이 적더라도 새로운 고용방법이나 사업형태를 인정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어 좋다”며 “니트도 모이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사회에 인정받고 싶다”고 말했다.

나카의 사례만 보면 와카신의 의도는 적중한 셈이다. 정형화된 고용 시스템에 거부하는 니트의 다양성을 포용함으로써 의욕이 없던 이들에게 확실한 동기를 심어준 셈이니 말이다.

와카신은 “지금 일본 사회는 따뜻하지만 건조한 상태”라고 진단하면서 “다양성을 인정하며 긍정적 관계를 확장해 나가는 일은 건조한 사회에 촉촉하게 수분을 공급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ㆍ요코하마=김경준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사진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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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한국일보 특별기획 ‘한중일 청년 리포트’의 일부입니다. ▦취업&창업 ▦주거 ▦결혼 ▦관계 등 총 네 가지 주제에 따라 각각 한국, 중국, 일본 청년들의 사례를 다루어 총 12편의 기사가 연재됩니다. 한국일보닷컴에서 전체 기사를 디지털 인터랙티브 형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바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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