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 조금이라도 더 불리려다 금융상품 불완전판매 피해 속출
과실입증 쉽지 않아 소송해도 패해 가입 때 간부급 재확인 등 보완해야
# 2011년 김모(76ㆍ여)씨는 수년 전부터 알고 지낸 대형 증권사 직원 A씨로부터 주가연계증권(ELS) 상품 가입 권유를 받고 노후자금 중 2억원을 맡기기로 했다. 상품 내용과 투자자 유의사항 등에 대해 설명하는 A씨에게 김씨는 “복잡해서 내용은 잘 모르겠고, 몇 달만 넣었다가 금방 빼겠다”며 A씨가 알려주는 대로 청약서와 위험고지문에 서명했다. 증권사에서 확인 전화가 왔을 때도 A씨가 말해준 대로 “네”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서너 달 후 주식 시황이 안 좋아지면서 잔고가 갑자기 줄어들기 시작했다. 결국 3년 만기 뒤 김씨의 손에는 7,000만원만 남았다. 수십년 동안 모아온 노후 대비책을 상당 부분 날린 김씨는 억울한 마음에 증권사와 금융감독원에 진정을 넣었지만 불완전 판매를 입증하지 못해 연거푸 기각당했다.
#정년 퇴직 후 은행에 퇴직금을 맡기고 이자로 생활하던 성모(69)씨는 낮은 이율 때문에 고민하다 지난해 5월 한 시중은행을 찾았다. 중국 펀드 상품을 추천하는 은행 직원에게 투자 위험에 대해 묻자 그는 “장기적으로 중국경제가 성장할 것이니 염려 놓으라”며 상품 설명서 등 서류 뭉치를 들이 밀었다. 직원이 짚어주는 대로 서류에 도장을 찍는 데는 채 15분이 걸리지 않았다. 초반에는 수익이 나는 것처럼 보였지만 하락세로 바뀌더니 곧 연말에는 원금의 30%가량이 사라졌다. 덜컥 겁이 나 상품 가입 당시 설명서를 찾아 보니 ‘초고위험’이라는 상품 등급이 그제서야 눈에 들어왔다. 은행 측에 항의했지만 위험고지문에 동의한 터라 까먹은 돈을 되돌려 받지는 못했다.
파생금융상품이나 펀드 등 복잡한 금융상품의 위험성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한 채 노후자금을 투자했다가 손실을 보는 노년층이 속출하고 있다. 고령화 시대와 저금리 상황이 겹치면서 노후자금을 조금이라도 더 불리려고 했다가 낭패를 당한 경우들이다. 이처럼 고령자들을 대상으로 한 불완전 판매는 금융사 측 고의나 과실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최근 출시된 금융투자상품들은 계약 내용이나 수익 구조가 복잡해 은행이나 증권사 등 판매자의 설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특히 고령층은 “믿을 테니 알아서 해달라”며 투자를 일임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문제는 금융투자시장의 급격한 변동으로 손실을 입은 경우 피해자가 불완전 판매 사실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구제가 쉽지 않다. 대법원은 지난 7일 금융투자업체가 투자정보를 제대로 알리지 않고 상품을 판매해도 손해배상 책임을 따질 때는 기준을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불완전 판매를 주장하며 분쟁 조정을 해달라고 찾아오는 민원인은 대부분 법적으로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경우”라고 말했다.
불완전 판매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금감원은 올해 4월부터 70세 이상 고령자들에게 전담 창구를 마련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금융투자상품 판매 관련 고령 투자자 보호방안’을 지난해 11월 발표했지만 여전히 노년층을 겨냥한 불완전 판매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손정국 한국금융투자자보호재단 사무국장은 “상품을 팔아야 하는 입장에선 위험이 덜 드러나도록 설명하는 경향이 있어 고령자들이 스스로 상품을 고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고령 투자자의 불완전 판매에 대해선 입증 책임을 완화하거나 지점장 등 관리직이 재차 확인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등의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아람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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