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여파가 크다. 드라마 속 주인공과 동일연령인 나는 특히 드라마 속 패션 경향들을 살펴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당시 교복처럼 군림한 일명 떡볶이 코트, 더플코트가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최근 패션 매장 한 구석을 장식한다. 요 근래 지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복고풍은 드라마를 통해 거의 방점을 찍은 듯하다.
인간은 유사 이래 다양한 종류의 코트를 개발해왔다. 패션의 각 품목엔 기능적 속성을 넘어, 인간이 오랫동안 사용하면서 덧붙인 문화적 가치가 새겨져 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코트의 원형이 태어난 곳은 페르시아, 바로 이란이다. 코트는 이미 서양 중세부터 일상의 주요한 품목이었고, 외부의 한기를 이겨내야 하는 인간을 위한 필수품이었다. 인간은 코트의 소재와 디테일, 장식요소를 통해 계층의 변별적 지표를 상세하게 만들어왔다. 철학자이자 혁명가인 칼 마르크스에게도 코트는 중요한 사물이었다.
사실 마르크스는 꽤 유복한 중산층 가문에서 태어나 자랐다. 1841년 고전 그리스 철학으로 박사를 받은 후, 그는 학교에 남기보다 당시 점점 첨예해지는 자본주의 하 경제체제의 계급 불평등과 착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본주의 연구에 천착한다. 당시 마르크스의 주요 수입원은 몇 개의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게 전부였다. 형편없는 원고료로 가계를 꾸려가기란 버거웠다. 그때마다 전당포에 자신의 오버코트를 저당 잡히고 식료품을 사야 했다. 그는 이 경험을 통해 교환수단으로서의 코트의 가치를 배웠다.
이 사건을 통해 마르크스는 또 하나의 큰 가르침을 얻는다. 코트에는 경제적 가치 이상의 것이 담겨있음을 배우는 계기가 된 것. 전당포에 코트를 맡기는 날엔, 그가 글을 쓰는 대영도서관의 열람실 출입이 불가능했다. 대영도서관은 코트를 착용하지 않은 이들의 입장을 불허했다. 코트가 없는 인간은 ‘타인들에게 보여질 만한 적합한’ 인간으로 취급 받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뼈저린 경험을 통해 마르크스는 옷이 가진 상징적인 힘을 직접 경험했다. 사회적 정체성과 이미지를 주조하고, 사회 속에서 자신을 차별화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패션의 진짜 힘을 학습했다. 복식 연구자들의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한 벌의 코트에서 시작되었다’는 농담은 그럴듯해 보인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당 선언’을 통해 패션이 사회적 관행으로 발전해가는 환경을 지적했다. 변화와 일시성이 안정성과 전통을 극복하는 사회의 모습을 그린 것. 당시 발흥하는 패션산업과 더욱 짧아진 옷의 유행주기를 보며, 기존의 고정되고 견고한 가치들이 근대 도시사회와 자본주의의 영향으로 허물어져간다고 본 것이다. 시골의 구 귀족들과 도시의 부르주아들은 새롭게 태어나는 시대의 계층별 리더십을 차지하기 위해 싸웠다. 이때 가장 큰 지표가 된 것이 바로 패션이다. 게다가 물건 소비를 창출하기 위해, 기능과 스타일을 변형시킨 제품을 지속적으로 내놓으면서 이전 제품을 구식으로 만드는 계획적 진부화의 개념도 이때 태어났다. 패션은 각자 품목의 특성에 맞는 유통체계들을 개발시켜갔고 패션 저널리즘을 통해 시각적으로 화려한 세계를 사람들에게 노출시켰다. 마르크스의 ‘경제학 노트’의 ‘견고한 모든 것은 대기 속으로 용해된다’는 금언은 패션의 역동성을 받아들인 사회의 풍모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말이다.
최근 한국의 정치지형은 마르크스가 설명해낸 시대의 모습을 닮았다. 거대 양당으로 구획되어있던, 한 시대의 질서가 무너져가고 있다. 마치 중세시대 가문의 상징으로 달았던 문장(Coat of arms)을 새롭게 디자인하고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디자인한 코트가 겨울을 이겨내기에 가장 좋다’라고 말하는 듯싶다. 내게 어떤 코트를 추천해주겠느냐고 묻는다면, 그저 튼튼한 안감과 몸을 따스하게 잘 안아주는 실루엣과 여백, 튼튼한 심을 넣어 쉽게 형태가 무너지지 않는 코트를 추천하겠다. 색깔은 중요하지 않다. 캐멀색이건, 크림색이건. 물론 레드 코트도 좋다.
김홍기 패션큐레이터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