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3일에 치러질 20대 총선을 한달 정도 늦추자는 총선연기론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안철수 의원이 주도하는 가칭‘국민의당’이 선거구 획정 지연에 따른 정치신인들의 피해 최소화와 유권자의 선택권 보장을 위해 총선연기 검토를 공식 제기하자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14일 일제히 무책임하다고 반대하고 나섰다. 선거구 실종이라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해결할 생각은 않고 책임공방에만 매달리는 정치권의 행태가 개탄스럽다.
법률로 정해진 선거일을 연기하자는 주장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천재지변 등 부득이한 사유로 총선을 실시할 수 없을 경우 대통령이 선거를 연기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지금의 선거구 공백사태를 천재지변과 같은 물리적 선거장애 상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더욱이 전쟁 중이던 1952년에도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가 연기되지 않고 치러졌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법정 선거일을 변경하는 선례를 남길 경우 악용될 소지도 있다. 헌정의 안정을 위해 총선 연기론의 공론화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총선연기론을 무조건 터무니 없다고만 할 수 없는 게 지금의 상황이다. 선거구가 없어지면서 정치신인들은 현역의원들에 비해 매우 불리한 처지다. 선거구획정이 지연될수록 그들에겐 공평한 경쟁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총선 자체의 정당성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중앙선관위는 종전 선거구를 적용해 예비후보들에게 선거운동을 허용하는 편법을 동원했지만 상황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유권자들도 충분한 시간을 갖고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상당수 예비후보들이 대법원에 총선실시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총선연기 헌법소원도 제출된 상태다. 총선 이후에는 선거무효 소송 사태가 잇따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을 외면하고 새누리당과 더민주가 국민의당의 총선연기 주장을 창당 일정에 쫓긴 신생 정당의 당략으로만 몰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선거구 조정 협상이 쉬운 일은 아니라지만 사상 초유의 선거구 공백사태가 초래된 데는 양대 정당의 정치력 부재와 무능, 기득권 집착 탓이 크다. 선거구 획정이 지연돼도 현역의원들은 별로 손해 볼 게 없다. “거대 양당의 기득권 카르텔”이라는 비판을 들어도 싸다. 두 당은 국민의당을 무책임하다고 비난하기에 앞서 스스로의 책임부터 돌아보고 반성해 마땅하다. 특히 다수당의 기득권에 집착해 협상을 지연시키고도 원내대표를 대통령 특사로 내보낸 새누리당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정말로 선거를 연기하지 않을 수 없는 사태가 오기 전에 양당부터 정신을 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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