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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손학규, 기자들과 숨바꼭질 한 까닭

입력
2016.01.14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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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의 최측근인 이남재 동아시아미래재단 전략기획본부장이 13일 광주 북구 적십자광주전남지사 수련관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인삿말을 하고 있다. 광주=뉴시스
손학규 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의 최측근인 이남재 동아시아미래재단 전략기획본부장이 13일 광주 북구 적십자광주전남지사 수련관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인삿말을 하고 있다. 광주=뉴시스

전국에 눈발이 날린 13일 오후 2시 광주 북구 매곡동 광주적십자회관 수련원. 광주 북구을 출마예정인 이남재 동아시아미래재단 전략기획본부장의 출판기념회가 열린 이곳에 카메라 5,6대를 포함한 취재진 20여명의 취재 경쟁을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취재진이 모인 곳은 행사장 내부가 아니라 찬바람이 매서운 야외의 출입구였습니다. 취재진의 관심사가 출판기념회 행사가 아니었던 거죠. 바로 이 행사에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예상된 손학규 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때문이었습니다. 이 본부장이 손 전 고문의 최측근인데다, 이날 나온 책도 손 전 고문과의 만남과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한 정책을 제시하는 저서여서 손 전 고문의 참석이 예상됐습니다. 사전 고지된 행사식순에도 '손학규 대표의 인사말'이 포함돼 있었고 '손 전 고문이 오전에 광주로 향했다'는 말까지 돌면서 취재진의 기대감은 점점 커졌습니다.

그러나 행사 시작된 지 한참이 지나도록 손 전 고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30분을 넘기자 추위와 싸우던 야외 카메라가 하나 둘 철수하기 시작했습니다. 행사 관계자들은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고, "언론 관심 때문에 불참하기로 한 것 같다"는 해석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러나 다시 30여분이 지날 즈음 철수했던 카메라가 2,3대가 입구 쪽에 황급히 설치됐고 행사장에서 몸을 녹이던 기자들도 급히 빠져 나왔습니다. "근처에서 대기하던 손 전 고문이 이쪽으로 출발했다"는 소문이 현장에서 급속도로 번진 것입니다.

그러나 행사가 완전히 종료될 때까지 손 전 고문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뒤풀이가 이어진 광주 북구의 한 주점에서도 "그래도 손 전 고문이 잠시 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퍼졌지만 손 전 고문은 전화로 인사를 대신했습니다. 취재진은 결국 '허탕'을 친 셈이죠.

이날 한나절 넘게 이어진 취재 열기는 손 전 고문에 대한 언론과 정치권의 높은 관심 때문입니다. 야권 분열 상황에서 내홍을 겪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조기 선거대책위원장 후보로 손 전 대표를 거론하고, 국민의당에서는 '대표 영입설'까지 흘러나오는 등 너도나도 '손학규 모시기'에 나선 가운데 손 전 고문의 몸값이 한껏 높아진 상황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죠. 이 때문에 강진 산골에서 칩거 중인 손 전 고문이 산에서 내려올 때마다 일거수일투족이 기사화되고 있습니다. 손 전 고문 내외의 거처에 함께 머물고 있는 윤명국 동아시아미래재단 사무처장은 “하룻동안 기자들 전화를 100통이 넘게 받았는데 못 받은 전화도 그 정도 된다, 당대표 시절보다 더 많이 받았다”고 혀를 내둘렀습니다.

손 전 고문은 이날 출판기념회 참석 대신 민주화운동 시절 인연을 맺은 고(故)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순천 기념전에 참석했습니다. 이 본부장과의 특별한 인연에도 불구하고 불참한 것에 대해 자신에게 집중된 언론과 정치권의 관심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관측이 힘을 얻습니다. 이 본부장은 손 전 고문과 대학 사제지간을 넘어 손 전 고문이 1993년 경기도 광명 재보궐선거로 국회의원 선거에 첫 출마할 당시 휴학 후 비서를 자처했던 “아들 같은” 사람입니다. 이날 출판기념회에서 송태호 동아시아 미래재단 이사장은 "참석하지 못해 이 본부장에게 미안하다"는 손 전 고문의 격려 인사를 대신 전했습니다. 앞서 송 이사장은 강진으로 손 전 고문을 모시러 갔다가 읍내에서 매운탕 점심만 함께 한 뒤 돌아왔다고 합니다. 이때 동행했던 한 인사는 "지금 상황에서는 손 전 고문이 어떤 말을 하든 한쪽 편을 드는 듯 들릴텐데 그게 부담되셔서 안 오신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정치권에선 손 전 고문 못지 않게 손학규계의 행보도 관심사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잔류파'(이춘석, 조정식 의원 등)와 '탈당 후 국민의당 이적파'(김동철, 최원식 의원 등)가 뚜렷이 갈리고 있습니다. 이날 행사장에 참석한 세 명의 전ㆍ현직 의원도 각각 잔류(양승조 의원), 무소속(이용섭 전 의원), 국민의당(김유정 전 의원)으로 나뉘어 눈길을 끌었습니다. 행사장에서 만난 수도권, 호남권 손학규계 인사들도 선거를 앞두고 거취를 고심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우리가 탈당하지 않도록 당(더민주)이 잘해줬으면 좋겠다"는 이도 있었고 "이미 민심은 당을 떠났다"고 잘라 말하는 이도 적지 않았습니다.

손 전 고문이 측근들의 조언 요청에 "본인이 직접 판단하라"는 선문답을 내놓는 것을 두고도 해석이 분분합니다. 현실정치를 떠나 있는 손 전 고문의 구심점이 약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는가 하면 향후 야권 통합에 대비한 포석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분당 국면에 들어선 이상 각기 다른 지대로 흩어지는 것이 훗날 통합과 세력화에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손 전 고문은 "정계를 은퇴한 사람"이라며 정치권과 거리 두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도권 출마를 준비 중인 한 측근은 "손 전 고문 말씀에 따라 아직 예비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고, 또 다른 측근은 "손 전 고문의 허락을 받고 움직일 것"이라고 밝힌 것을 감안하면, 적어도 정치권에서 손 전 고문의 영향력이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려울 듯 합니다. 측근들은 "이날 불참도 결국 인간적 정보다는 훗날 큰 그림을 보고 결정하신 것"이라며 손 전 고문의 복귀 가능성에 상당수 희망을 거는 분위기였습니다. 다만 이번 총선에는 나서지 않으리란 전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송은미기자 mys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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