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적 건축 디자인, 가난한 삶 바꿀 수 있다”

2016년 프리츠커상 수상자 알레한드로 아라베나. 크리스토발 팔마 촬영

“삶의 최전선에서 우리가 싸워 이겨야 할 다양한 과제들이 있습니다. 주변 환경을 더 낫게 만들고, 그로써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야 합니다.”

칠레 건축가 알레한드로 아라베나(49)는 지난해 7월에 2016년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총감독으로 선정되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올해 비엔날레의 화두로 ‘전선에서 알리다(Reporting from the Front)’를 꺼내며 건축이 사람들의 삶을 바꿀 수 있음을 강조하고 싶어했다. “우리는 베니스에서 삶의 최전선에서 건축이 무엇인가를 바꿔내는 데 성공한 사례를 보게 될 겁니다.”

아라베나가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했다. 프리츠커상을 주관하는 하얏트 재단은 13일 피터 팔럼보 심사위원장을 포함한 8명의 심사위원단이 2016년 수상자로 아라베나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칠레 건축가로서는 첫 수상이며, 남미에서는 루이스 바라간(1980년) 오스카 니어마이어(1988년) 파울로 멘데스 다 로차(2006년)에 이어 네 번째다.

칠레 이키케 시에 건설된 아라베나의 대표작 ‘엘리멘탈 프로젝트’. 공공주택을 증축이 가능한 상태(왼쪽 사진)로 공급하면, 나중에는 거주민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으로 집을 증축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오른쪽 사진). 크리스토발 팔마 촬영

아라베나는 미적으로 뛰어난 초대형 건축보다 사회 운동으로서 실용성 높은 건축을 추구해 온 건축가다. 특히 남미의 공공 주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대표작 ‘엘리멘탈 프로젝트’는 2004년 칠레 이키케시 중심부를 30년 동안 불법 점거한 빈민들을 위해 고안해낸 공공 주택 설계다. 아라베나는 도심지의 비싼 지가와 제한된 공적 자금을 고려해 ‘절반만 완성된’ 집을 공급해 건축 비용을 절감하고, 나머지는 증축이 가능한 빈 영역으로 남겨뒀다. 거주지 지원 대상인 주민들은 값싼 집에 살면서 기존 공동체를 유지하고, 뒤에 삶의 여건이 나아지면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으로 빈 공간에 집을 증축할 수 있다.

아라베나는 2014년 TED 강연에서 “도시화를 막을 수는 없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도시로 몰려들 것이고 빈민들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에게 도시 내에서 주거를 공급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엘리멘탈 프로젝트는 아라베나가 이 과제에 맞서 내놓은 건축가로서의 해답인 셈이다. 그는 이 프로젝트로 2008년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했고 2010년 멕시코 몬테레이와 2013년 칠레 콘스티투시온에도 비슷한 주거지를 건설했다. 2016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예술감독인 김성홍 서울시립대 교수는 “아라베나가 고안한 절반만 짓는 집은 사회적인 문제를 인도주의로 접근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건축 디자인을 통해 실질적 해법을 제시한 것”이라 말했다.

아라베나의 사무실 엘리멘탈이 제안한 콘스티투시온 재개발 계획 이미지. 콘스티투시온은 2010년 지진 해일로 극심한 피해를 입었으나(위) 아라베나는 콘스티투시온 주민들과 대화한 끝에 지진 해일을 자연의 힘으로 막고 주민들이 강가를 공공장소로 이용할 수 있도록 숲을 조성하기로 결정했다(아래). 엘리멘탈 자료

아라베나가 운영하는 ‘두 탱크(Do Tankㆍ‘싱크 탱크’란 표현에 대응해 사회적 건축을 실천하는 기관이라는 의미)’ 엘리멘탈은 건축 설계를 할 때 공동체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2010년 지진 해일의 피해를 본 칠레 남부 콘스티투시온 재건 계획이 대표 사례다.

아라베나는 언젠가 다시 돌아올 지진 해일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물가를 공터로 남기는 것과 커다란 방벽을 세우는 방법을 고려했다. 공터를 만드는 방안은 이미 공터에서 살던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쳤다. 방벽은 이미 일본에서 시도했으나 실패한 사례가 있었다. 여기서 엘리멘탈의 건축가들은 주민 의견을 더 많이 모으기로 했다. 주민들은 물가에 가까이 가고 싶어했고, 공공 장소가 부족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렇게 해서 강가에 숲과 공원을 조성하자는 제3의 대안이 나왔다.

프리츠커상 심사위원단은 아라베나가 “예술으로서의 건축이라는 과제를 충족했을 뿐 아니라 오늘날의 사회ㆍ경제적 도전에 정면으로 맞서는 자세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프리츠커상 심사위원단이 아라베나를 수상자로 선정한 것은 세계의 건축가들이 사회적인 질문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전략적인 건축으로 응답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보인다”고 말했다.

프리츠커 건축상은 프리츠커 가문이 운영하는 하얏트 재단이 1979년 제정한 상으로 국적, 인종에 관계없이 뛰어난 건축예술을 선보인 건축가들에게 매년 상금 10만 달러와 메달을 수여해 왔다. 2015년에는 독일 생태건축의 거장 프라이 오토가 첫 사후 수상자였고, 2014년에는 이재민을 위한 종이 건축을 고안한 일본의 반 시게루가 받았다.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알레한드로 아라베나의 건축물들

2014년에 세운 칠레가톨릭대 산호아킨 캠퍼스의 안젤리니 센터. 아라베나는 유리 파사드(건물의 겉면을 유리로 덮은 건축방식)가 사무실 내부에 태양광을 직접 들이면서 온실효과를 일으켜 결과적으로 에너지를 낭비하게 한다고 보고 콘크리트 벽으로 두른 건축물을 설계했다. 니나 비딕 촬영

안젤리니 센터의 내부. 아라베나는 내부에 빈 공간을 설치함으로서 겉 벽면을 콘크리트로 두르면서 발생하는 채광 문제를 해결하는 한편 서로 다른 층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관찰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제임스 플로리오 촬영

2010년 멕시코 몬테레이에 건설된 ‘엘리멘탈 프로젝트’ 주거지. 가운데 노란색 부분이 증축의 예시로 건설된 부분이다. 라미로 라미레스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