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를 오가다 보면 졸음운전의 위험성을 일깨우는 표어들이 곳곳에 보인다. 그런데 그 말이 섬뜩하기 그지없다. ‘졸면 죽는다’ ‘졸음운전은 살인운전’ ‘졸음운전! 자살운전! 살인운전!’ ‘겨우 졸음에 목숨을 거시겠습니까?’. 그 표어를 보는 운전자의 정신이 번쩍 들긴 하겠지만 그 뒷맛은 그리 좋지 않다. 죽는다느니, 자살이니, 살인이니 하는 표현은 일종의 협박이요, 언어폭력이다.
물론 고속도로 관계자들의 고충도 이해 간다. 어떤 방법을 써도 줄어들지 않는 졸음운전 사고. 이렇게 자극적인 표현을 통해서라도 소중한 생명을 지키겠다는 발상에서 나온 고육책이니 한편으로는 고마워할 일이기도 하다. 보도에 따르면 그 효과도 적잖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목적이 숭고하더라도 그 방법이 아름답지 못하다면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언젠가 순천의 선암사에 간 일이 있다. 그 경내의 대웅전을 오르는 돌계단의 난간 끝머리에 부탁의 글이 새겨져 있었다. 한쪽에는 ‘걸음은 조용조용’, 다른 쪽에는 ‘말씀은 가만가만’이라고 씌어 있다. ‘뛰지 마시오’라든가 ‘떠들지 마시오’라는 위압적 표현보다는 훨씬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오히려 그 부드러움에 읽는 이들의 마음도 따뜻해져 절로 걸음이 조용해지고 말소리가 낮아진다.
그렇게 낮고 겸손한 목소리로 말해도 그 간절한 뜻이 전달된다. 높고 거친 말은 잠깐의 효과는 있을지라도 결국은 마음을 병들게 한다.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말은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 졸음과 싸우는 운전자에게 산뜻한 청량제가 될 수 있는 그런 표어는 없을까.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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