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히말라야'의 진짜 재미는 관람 후에 시작됩니다. 진실과 허구의 경계를 확인하며 여운을 즐기는 움직임이 활발한데요. 기억에 남는 명장면이 실화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더 진한 감동을 느낄 수 있죠. 실화영화의 묘미는 여기서 찾을 수 있습니다.
휴머니즘을 녹여낸 실화영화엔 종종 작위적으로 느껴질 만큼 믿기 힘든 장면도 그려집니다. 감동을 극대화하기 위해 픽션이 가미된 경우가 많은데요. 감동도 좋지만 관객은 진실이 궁금합니다. 휴머니즘 실화영화,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요?
1. '히말라야' 엄홍길, 죽음의 비바크 진실은
"비바크 준비해!"
영화 '히말라야'에서 엄홍길 대장(황정민)은 고 박무택 대원(정우)과 칸첸중가를 오르던 중 해가 떨어지자 비바크(biwak)를 시도합니다. 비바크는 산에서 텐트를 사용하지 않고 지형지물을 이용해 밤을 지새우는 일을 뜻하는데요. 그렇다면 그들은 진짜 칸첸중가 설벽에서 로프에만 의지해 밤을 지새웠을까요?
이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엄 대장은 2000년 박 대원과 나선 칸첸중가 등정에서 '죽음의 비바크'를 감행했는데요. 해발 8,500m 설벽에 엉덩이만 댄 채 하룻밤을 버텼습니다. 이 일화는 영화에 그대로 녹아 엄 대장과 박 대원의 우애를 그린 메타포(metaphor)로 쓰였죠.
또 극 중 박 대원은 사고로 고글이 벗겨져 설맹이 온 것으로 그려지는데요. 실제 사망보고서에 따르면 박 대원은 기념사진을 촬영하면서 고글을 벗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설맹이 결정적인 사망원인이 된 것은 사실인 셈입니다.
2. '제보자' 황우석 사건 취재 과정, 현실은 더 가혹했나
2014년 11월 한국일보와의 100℃ 인터뷰에서 한학수 MBC PD는 영화 '제보자'에 대해 "영화가 실제보다 강도가 약한데, 임순례 감독이 대단히 절제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2005년 6개월간의 취재 끝에 황우석 교수 논문 조작 사건을 방송했는데요. 당시 국익에 반한다는 전국민적인 비난 속에 각종 음모론도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취재 과정에 중심을 둔 영화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죠. (▶관련기사 보기)
비교적 명료하게 갈등이 해소되는 영화와 달리 현실은 참혹했습니다. 한 PD는 진실을 밝힌 후 일선에서 밀려나 비제작부서로 발령이 났습니다. 2014년 12월에는 MBC 신사옥 야외스케이트장 관리를 맡을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는데요. 결국 해당 업무에선 배제됐죠. 제보자 류영준 교수도 방송 이후 2년간 실직 상태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류 교수는 현재 강원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3. '변호인' 노무현은 진짜 막노동을 했나
영화 '변호인'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냄새 물씬한 변호사로 그려집니다. 사법고시 합격 전 막노동을 하고 국밥집 아줌마와 정을 쌓기도 하죠. 현실에서 막노동과 사시 공부를 병행한 것은 사실이지만, 국밥집 아줌마와의 인연은 픽션입니다.
극중 송우석(송강호)은 법정에서 "알리와 포먼이 권투시합을 하는데 김일성이 알리편을 들었을 때 피고가 알리편을 들면 그것도 이적행위입니까?"라고 변론했습니다. 이에 검사는 "북괴를 찬양하는 발언을 자제해 주십시오"라고 답했는데요. 이 대사 역시 사실입니다. '부림사건' 당시 검사였던 최병국 전 한나라당 의원의 답변 또한 대사 그대로입니다. 최 전 의원은 이후 부림사건에 대해 "고문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죠.
4. '파파로티' 성악가 김호중은 '할머니의 유언'이 만들었나
영화 '파파로티'에서 조폭 고등학생 이장호(이제훈)은 부모님 없이 할머니 손에서 커갑니다. 그는 병으로 할머니가 떠나자 마음을 다잡고 성악 공부에 매진하게 되는데요. 이 드라마틱한 배경은 설정일까요?
모두 사실입니다. 실제 인물인 성악가 김호중은 집을 나간 부모 대신 할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방황하던 그는 어린 나이에 조폭 생활도 시작하는데요. 2008년 대장암을 앓던 할머니가 "하늘에서 지켜볼 테니 똑바로 살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지자 포기했던 성악의 길을 다시 걷기로 하고 예고에 진학했습니다.
다만 극 중 이장호를 조직에서 빼내기 위해 나상진(한석규) 교사가 직접 조폭 보스를 찾아가는 장면은 설정입니다. 영화 모델이 된 서수용 교사는 김호중이 과거를 정리하는 데 직접적으로 개입하지는 않았습니다.
5. '연평해전' 한상국 상사, 스스로 조타키에 손 묶었나
2002년 6월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고 한상국 상사는 41일 뒤 조타실 안에서 발견됐습니다. 최후의 순간까지 조타실을 지키다가 배와 함께 수몰된 건데요. 이 사실은 영화 상에서 더욱 극적으로 그려졌습니다. 한 상사가 스스로 손을 키에 묶는 설정이 추가됐죠.
의무병이었던 고 박동혁 병장은 총탄 파편 100여 개를 꺼내는 수술을 받고 84일 만에 숨졌습니다. 영화 상에서 그는 청각장애인 어머니들 둔 외아들로 그려지지만 이는 휴머니즘을 극대화하기 위한 설정입니다. 이 외에 박 병장을 괴롭히는 이 병장(한성용), 고 윤영하 소령의 연인 최 대위(이청아) 등 가상 캐릭터가 추가됐습니다.
이소라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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