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1월 14일
서울대 언어학과 과대표 박종철(1964~1987)이 1월 14일 고문사했다. 그는 13일 자정께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로 불법 연행돼 폭행과 전기고문, 물고문을 당했다. 그의 죄라면 박종운이라는 이를 알고 지낸 거였다. 박종운(61년생, 사회학과 81학번)은 학내 서클 ‘대학문화연구회’선배로, 84년 결성된 ‘민주화추진위원회’건으로 85년부터 수배 중이었다. 고문수사관들은 박종철을 고문하면 박종운의 소재를 파악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누구나 그처럼 끌려갈 수 있었고, 또 실제로 끌려가 고문 당하고도 법적 구제는커녕 어디 가서 하소연조차 제대로 못 하던 시절이었다. 불과 29년 전, 전두환 정권 말년도 그러했다.
지금 우리가 ‘박종철’을 기억할 수 있게 된 것은, 당시 중앙일보 검찰 출입기자 신성호의 공이 컸다. 그는 15일 오전 한 검찰 간부(당시 공안4과장 이홍규) 방에 들러 차를 마시던 중 “경찰들 큰일 났어.(…) 그 친구 대학생이라지? 서울대생이라며? ”라는 말을 듣고, 취재 후 당일 석간에 ‘경찰서 조사받던 대학생 쇼크사’라는 2단 기사를 단독 보도했다. 16일 당시 치안본부장 강민창은 기자회견을 통해 저 악명 높은 궤변 “책상을 ‘탁’치니 갑자기 ‘억’하며…”를 공식 발표했다.
쇼크사가 고문사로 확인된 것은 사망 검진의였던 중앙대병원 내과 전문의 오연상 덕이었다. 간호사와 함께 대공분실로 불려간 그는 5층 9호 조사실 바닥에 물이 흥건했고, 청년은 이미 숨져 있었고, 복부 팽만이 심했고, 폐에서는 수포음이 들렸다고, 본 대로 언론에 알렸다. 부검의였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과장 황적준도 경찰의 협박ㆍ회유를 뿌리치고 물고문에 의한 질식사라는 의견을 밝혔다. 시신은 16일 오전 화장돼 임진강의 한 샛강에 뿌려졌다. 흩날리는 유분에 대고, 허공에 대고, 아버지(박정기)가 했다는 말 “철아, 잘 가그래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대이…”도 그렇게 세상에 알려졌다.
정부는 17일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열었고, 19일 강민창은 조한경 등 2명의 수사관이 “지나친 직무의욕 때문에”저지른 일로 모든 책임을 떠 안겼다. 그날 그도 해임됐다. 그 해 6월 항쟁이 있었고, 대통령 직선제가 성취됐고, 국민은 노태우를 선출했다.
박종운은 2000년 한나라당에 입당해 3차례 총선에 출마했다. 당시 수사검사 박상옥은 2015년 대법관이 됐다. 전 중앙일보 기자 신성호는 지난 1월 2일 청와대 홍보특보가 됐다. 오연상은 교수로 지내다 2009년 개인 병원을 개업했고, 지난해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 병역비리 의혹 재판의 진료기록 감정인으로 참여했다. 아버지 박정기는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회원이 돼 전국의 농성장을 다니며 인권과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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