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피해자 1만명 시대…아이들이 배우는 폭력예방법은?
“권리라는 것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거에요. 오늘 저녁 아무것도 먹을 수 없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배가 고프고 심하면 배가 아픈 문제가 생기겠죠. 여러분들에게는 먹을 권리뿐 아니라 안전하고 씩씩하고 자유로울 권리가 있어요.”
13일 오전 서울 동작구 본동의 영본초등학교. 겨울 방학이 시작된 지 3주나 지났지만 이날 이곳에서는 특별한 수업이 진행됐다. 아동복지 전문기관인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4~6학년 학생 1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아동폭력예방 교육이다.
친절로 가장한 어른의 위험을 쉽게 깨닫지 못하거나, 이상하다고 여기면서도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형태의 폭력을 이해시키기 위해 상황극이 펼쳐졌다. 아동폭력예방 전문가 2명이 각각 초등학생 4학년 여학생과 삼촌 역할을 맡았다. 조카의 허벅지를 만지고 뽀뽀를 해달라고 요구하는 연기를 보여준 뒤 선생님의 질문이 이어졌다. “친구의 기분이 어땠을까요?”라는 질문에 “찝찝해요”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답답해요”등 여기저기서 진솔한 반응이 나왔다. 곧 이어진 상황극에서는 달라진 초등학생의 모습이 연출됐다. 삼촌의 요구에 “싫어요”라고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거리를 뒀다. “숙모랑 엄마에게 말할 거예요”라며 다른 어른에게 도움을 요청할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부모님을 포함해 누구든 자신의 의사에 반한 어떤 행동을 할 경우 거부의 뜻을 밝히고, 다른 어른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폭력을 예방할 수 있어요.” 선생님의 설명에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할 거냐는 질문에는 “할머니요” “아빠요” 등 평소 신뢰하는 어른을 답했다.
아동폭력은 성폭력만 있는 것이 아니다. 또래가 매일 돈을 요구하는 상황은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상황극에서 “이건 나쁜 짓이야. 안 돼”라고 이야기하고, 혼자서 이야기하기 힘든 상황일 경우 친구와 동행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수업을 들은 5학년 이시연(12)양은 “고민이 생기면 혼자서 끙끙대지 않고,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상담하겠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또 흥미를 보인 것은 낯선 이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호신술 교육이었다. 선생님은 팔을 잡혔을 때 발을 높이 들면 넘어질 수 있다며 상대의 정강이를 걷어차도록 직접 시범을 보였다. “아, 아프겠다!” 한껏 감정이 이입된 아이들의 반응이 쏟아졌다. 5학년 박세현(12)군은 “2년 전 차에 탄 낯선 사람이 차를 같이 타고 가자고 한 적이 있어 오늘 수업 내용에 아주 공감이 갔다”며 “몸을 제압 당했을 때 정강이를 차거나 딱딱한 팔꿈치를 이용해 상황을 벗어날 것”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90분 간 수업에서 교사들이 반복적으로 주지시킨 점은 ‘분명히 의사표현을 할 것’과 ‘문제가 생겼을 경우 신뢰할 수 있는 어른과 상담하라’는 것이다. 이날 교육을 맡은 아동예방폭력 전문가 허승지(25)씨는 “상담을 해주는 어른의 경우 ‘이야기하러 와 줘서 기쁘다’ ‘어려운 결심해줘서 고맙다’ 는 표현으로 아이의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2009년 국내에서 처음 아동폭력예방 교육을 시작한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인천 11세 소녀 아동학대 사건 이후 올해 1월 교육신청 건수가 지난해보다 2배 가량 늘었다고 밝혔다. 재단은 아동 뿐 아니라 교사와 부모 대상으로도 교육을 실시한다. 어떤 행위가 아동폭력에 해당하고, 아동폭력의 징후는 어떤 것이 있는지를 가르친다. 아동학대 가해자 10명 중 8명이 부모이고, 교사는 아동학대방지법 상 신고 의무자인만큼 이들에 대한 교육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재단 서울지역본부 아동옹호센터 이의선(36) 대리는 “아이와 부모, 교사가 함께 참여하면 교육 효과는 배가 된다”며 “특히 고위험군 가정의 경우 학교에서 교육 참여를 독려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