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이란은 늘 한 묶음이었다. 국제사회의 경고에도 아랑곳 없이 핵 질서를 교란하는 도발을 서슴지 않았다. 둘을 선명한 주홍글씨로 낙인 찍은 게 2001년 북한 이란 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규정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국정연설이었다. 후에 아버지 부시 대통령마저 “어떤 도움도 안 된 발언”이라고 비난했지만, ‘힘의 외교’를 주창하는 신보수파(네오콘)를 전면에 포진시키는 데는 더할 나위 없는 명분이었다. 북한과 이란이 플루토늄과 우라늄 기술을 맞바꾼다는 ‘북한ㆍ이란 커넥션’ 의혹이 나온 것도 그 즈음이다.
▦ 2010년 미국이 ‘세컨더리 보이콧’이라는 대(對) 이란 포괄적 제재를 처음 적용하면서 이란의 행로는 완전히 바뀌었다. 이란과 거래하는 제3국의 기업ㆍ금융기관까지 제재하는 이 조치가 없었다면 이란 핵협상은 타결되지 못했을 것이다. 2013년 대선에서 이란 국민이 온건성향의 하산 로하니 정권을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다. 경제제재 해제를 목전에 둔 이란은 굴레에서 벗어난 데 그치지 않고 중동에서 미국의 우방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란ㆍ사우디 갈등에서 미국이 동맹국인 사우디를 비난하는 상황을 누가 예견할 수 있었겠는가.
▦ 유감스럽게도 북한은 과거의 길을 고집하고 있다. 대선 후보 시절 ‘단호하고 직접적인 외교’를 주창해 김정일과의 정상회담 가능성까지 비쳤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두 달여 만에 북한으로부터 뒤통수를 얻어 맞았다. 2009년 4월 체코 프라하에서 야심만만한 ‘핵 없는 세상’ 구상을 밝히기 불과 몇 시간 전 북한은 장거리 로켓을 발사해 재를 뿌렸다. 오바마가 ‘전략적 인내’라는 북한 무시 전략으로 방향을 바꾼 것은 부랴부랴 연설문을 직접 수정할 수 밖에 없었던 이 때의 기억이 크게 작용했다.
▦ 미국의 전면적 제재에 직면한 북한이 다시 기로에 섰다. 제한적이나마 세컨더리 보이콧까지 거론되는 상황이 2010년 이란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후 전개과정은 비슷하지도 않을 것 같다. 주한미군 철수를 노리는 북한과 북핵을 아시아경략 카드로 생각하는 미국은 물과 기름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어제 임기 중 마지막 국정연설에서 이란 핵 타결의 성과를 강조하면서 “세계는 또 다른 전쟁을 피하게 됐다”고 말했다. 무력이 아니면 북핵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뜻일까.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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