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3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5대 노동법안 중 기간제법은 제외하고 나머지 4개 법안을 처리하자고 제안하면서 노동관련법 협상의 물꼬가 트일지 주목된다. 야당과 노동계가 가장 강하게 반대해 온 기간제법과 파견법 중의 하나가 사실상 철회된 만큼, 협상의 여지가 커졌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더민주)은 이날 당장 “파견법만으로도 충분히 나쁜 법”이라며 반발하긴 했으나 무작정 반대할 경우 여론의 역풍에 직면할 수 있어 고민에 빠진 모습이다.
정부ㆍ여당 한발 물러서…파견법도 협상 여지
박 대통령의 이날 제안은 여권이 그 동안 완고하게 밀어붙였던 노동법 처리 입장에서 한발 물러섰다는 점에서 여야간 협상에 숨통을 틔워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 동안 정부와 새누리당은 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산재보험법, 기간제법, 파견법 개정안 등 5개 법안을 반드시 한데 묶어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박 대통령의 제안은 일부 양보하더라도 나머지 법안은 반드시 1월 국회에서 처리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야당과 노동계가 파견법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는 만큼 여야 협상은 여전히 난항이 예상되긴 하지만 새누리당 내에선 파견법도 일부 내용을 수정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파견법은 몇 가지 부분에 있어 여야 협상의 여지가 있다고 봤기 때문에 기간제법만 제외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이 발의한 파견법 개정안은 ▦55세 이상 고령자 ▦근로소득 상위 25% 고소득 전문직 ▦뿌리산업(주조ㆍ금형ㆍ용접ㆍ표면처리ㆍ소성가공ㆍ열처리)의 파견 허용이 핵심이다. 현재 파견법은 간접고용의 폐해를 막자는 취지로 운전원, 건물청소원 등 32개 업종에만 파견을 허용하고 있으며 제조업에서는 금지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파견법은 재취업이 어려운 중장년에게 일자리 기회를 확대하기 위한 ‘중장년 일자리 법’이며, 어려운 중소기업을 돕는 법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정부, 여당 내부에서는 파견 허용 업무를 노사 자율로 결정하도록 하는 방안 등을 대안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 당장 반박 나섰으나 고민에 빠져
이날 박 대통령의 제안에 대해 야당과 노동계는 “비정규직을 무더기로 양산하는 파견법도 충분히 나쁜 법”이라며 일제히 거부했다.
김성수 더민주 대변인은 이날 박 대통령의 제안 직후 낸 논평에서 “파견 노동자를 비약적으로 늘리겠다는 비정규직 확대법으로 대통령이 최고로 나쁜 법을 가장 먼저 통과시켜달라는 것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한국노총 정문주 정책본부장도 “사회안전망을 허물고 보호받지 못하는 파견 노동자를 대거 양산하게 될 파견법은 노동계가 받아들이기 힘들다”며 “한국노총의 입장을 바꿀 이유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한국노총은 19일까지 정부가 노동개혁 법안의 국회 철회를 거부할 경우 대정부 투쟁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여당이 ‘대통령이 양보했다’며 야당을 압박하는 상황에서 반대만 지속하기엔 야당의 부담이 적지 않다. 여론이 ‘대통령 양보론’을 지지할 경우 책임이 고스란히 야당에게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여당이 4ㆍ13 총선에서 경제 실정의 책임을 ‘발목잡기 하는 야당 탓’으로 돌리며 총공세에 나서면 총선 표심과도 연결될 수 있다.
야당 핵심 관계자는 “무작정 반대라는 것만으로는 여론전에 밀릴 수 있다”며 “(14일) 원내정책조정회의 등을 통해 대응 전략을 치밀하게 마련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더민주 내부에서는 문재인 대표가 지난해 제안한 ‘파견법, 기간제법을 뺀 나머지 3개 법안 우선 협상’카드를 다시 한 번 제안하는 방안 등을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상준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이동현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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