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개봉하는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14일 개봉)와 ‘스티브 잡스’(21일 개봉)는 여러모로 닮았다. 두 영화는 2월 2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릴 제89회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의 주요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수작들을 선보여온 감독들의 면면, 출연 배우들의 연기력도 비교될 만하다. 실화를 바탕으로 스크린에 이야기를 펼치는 점도 닮았다. 완성도 높은 두 영화가 일주일 간격으로 개봉하며 흥행 경쟁을 벌인다.
세상과 맞선 두 남자
‘레버넌트’는 19세기 미국 대륙을 스크린에 펼쳐 놓는다. 모피 제조를 위해 사냥에 나선 무리의 안내자인 휴 글래스(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겪는 비극과 초인적인 사투가 압권이다. 무리가 인디언에게 쫓기던 중에 글래스는 곰의 습격을 받아 거동할 수 없는 처지가 된다. 돈만 밝히는 비열한 동료 피츠제럴드(톰 하디)는 글래스를 산 채로 버릴 음모를 꾸미고 글래스가 인디언 여인과의 사이에 난 아들 호크를 살해한다. 글래스는 살기 위해, 복수를 위해 인디언의 추격을 따돌리며 피츠제럴드의 뒤를 쫓는다. 처음에는 기다가, 이후엔 나무토막에 의존해 걷다가 나중엔 말을 훔쳐서 4,000㎞의 대장정을 완성한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 공동창업자 잡스의 삶을 스크린에 옮겨 놓은 것이다. ‘레버넌트’가 무심하고도 잔인한 대자연의 모습을 묘사한다면, ‘스티브 잡스’는 잡스의 삶의 이면을 들춘다. 매킨토시 컴퓨터(1984)와 새로운 유형의 컴퓨터 넥스트 큐브(1988), 애플의 신제품 아이맥(1998) 발표회를 앞둔 잡스(마이클 패스벤더)의 모습을 각기 비추며 그의 인생과 세계관을 살핀다. 옛 여자친구와 딸, 애플을 공동 설립했던 친구 스티브 워즈니악(세스 로건), 잡스와 회사 경영을 두고 갈등을 빚은 존 맥컬리 전 애플 최고경영자(CEO) 등이 대기실에서 발표회를 점검하고 발표 내용을 준비하는 잡스를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극적 갈등을 보여준다. 혁신을 추구한 잡스의 고집과 강박관념, 고독이 스크린을 채운다.
연출과 연기도 맞수
두 영화는 감독의 이름만으로도 영화팬들을 흥분시킬 만하다. ‘레버넌트’의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는 멕시코가 낳은 세계적 예술영화 감독이다. ‘아모레스 페로스’(2000)로 데뷔한 뒤 ‘21그램’(2003)과 ‘바벨’(2006), ‘비우티플’(2010)로 유명세를 얻었다. 지난해 ‘버드맨’으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거머쥐었다.
‘스티브 잡스’를 연출한 대니 보일의 명성도 높다. ‘트레인스포팅’(1996)으로 영화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뒤 ‘비치’(2000)와 ‘28일후’(2002), ‘127시간’(2010) 등 화제작을 내놓았다. 2009년엔 ‘슬럼독 밀리어네어’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안았다. 아카데미 최고 영예를 누려본 두 감독의 대결인 셈이다.
이냐리투는 자연광으로 대자연의 실재를 스크린에 옮기는데 집중하고, 보일은 등장인물들의 촌철살인 대사를 펼쳐내며 정보통신 역사의 결정적인 순간들을 포착해낸다. 주연이 펼치는 연기도 눈부시다. 디캐프리오는 살아나기 위해 물고기와 버팔로 고기를 날것으로 먹는 글래스의 모습을 세밀히 묘사한다. 분노로 가득한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그의 모습은 오랜 잔상을 남긴다. 디캐프리오의 폭발적인 몸동작과 달리 패스벤더는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잡스의 고뇌와 열정을 정적인 연기로 섬세하게 표현한다.
수상 경쟁에선 ‘레버넌트’가 반보 앞서 있다. 지난 10일 열린 제73회 골든글로브상 시상식에서 노른자위라 할 감독상과 드라마부문 작품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각본상(애런 소킨)과 여우조연상(케이트 윈즐릿)을 받았다. ‘레버넌트’는 15세 관람가, ‘스티브 잡스’는 12세 관람가다.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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