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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쁘다 스누피 오셨네

입력
2016.01.13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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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브라운과 스누피를 주인공으로 한 찰스 슐츠의 코믹스트립 '피너츠' 관련서적이 잇달아 출간됐다. 왼쪽부터 '피너츠' 완전판 1,2권(북스토리), 찰리브라운과 함께 한 내 인생(유유), 스누피와 친구들의 인생 가이드(오픈하우스)
찰리 브라운과 스누피를 주인공으로 한 찰스 슐츠의 코믹스트립 '피너츠' 관련서적이 잇달아 출간됐다. 왼쪽부터 '피너츠' 완전판 1,2권(북스토리), 찰리브라운과 함께 한 내 인생(유유), 스누피와 친구들의 인생 가이드(오픈하우스)

어떤 만화들은 우리를 배신한다. 귀여운 짱구는 알고 보니 성인물이었고, 우리를 지켜줄 줄 알았던 철인28호는 일본의 안위에 더 관심이 많았다. 스누피도 다르지 않다.

찰스 슐츠의 만화 ‘피너츠’가 국내에 처음 알려진 건, 만화평론가 김낙호씨에 따르면 1970년대 중반 캐릭터 상품으로서였다. 80년대 어린이 그림책과 뮤지컬로, 또 비디오와 TV 시리즈로 나올 때까지도 ‘피너츠’가 아이들이 이해하기엔 다소 철학적이고 무게 있는 스토리 라인을 바탕으로 두고 있다는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김씨는 ‘피너츠’ 등장인물 간의 관계도가 “당대 유행하는 골목길 중심 명랑만화와 꽤 유사한 구석이 있으면서도 더 고즈넉하고 철학적인 질감의 차별화된 취향”을 갖고 있었다며 국내 팬층을 “스누피 중심의 캐릭터를 즐기는 이들과 인간사 드라마의 방향성을 즐기는 소수의 깊은 팬덤”으로 구분했다.

지난해 스누피 탄생 65주년 및 영화 ‘스누피: 더 피너츠 무비’ 개봉을 기념해 잇달아 나오고 있는 관련 서적들은 주로 후자를 기쁘게 하는 것들이다. 스누피 마니아들에게 최고의 희소식은 ‘피너츠’ 완전판 출간. 슐츠가 1950년 10월 2일부터 2000년 2월 13일까지 50년 간 연재했던 코믹스트립의 일일 연재분과 일요 특별판을 하나도 빠짐 없이 모은 것으로, 분량으로는 350여쪽짜리 책 25권에 해당한다. 지난해 말 우선 출간된 1,2권엔 1950~1954년 연재분이 담겼다. 스누피가 인간보다 개에 가깝고 찰리 브라운의 머리숱이 지금보단 풍성하던 시절이다. 출판사 측은 “한국에 피너츠 팬이 꽤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 번도 완전판이 나온 적 없다”며 “앞으로 1년에 4권씩, 전집을 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피너츠' 1950년판(위)과 1990년판. 초기에 애완견에 가깝던 스누피가 점점 인간처럼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북스토리, 오픈하우스 제공
'피너츠' 1950년판(위)과 1990년판. 초기에 애완견에 가깝던 스누피가 점점 인간처럼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북스토리, 오픈하우스 제공

유유출판사에서 나온 ‘찰리브라운과 함께 한 내 인생’은 슐츠가 쓴 기고문, 책의 서문, 강연 등을 모은 책이다. 만화를 통해 간간히 드러났던 슐츠의 남다른 인생관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슐츠가 50년 간 단 한 번도 남의 손을 빌지 않고 직접 만화를 그렸으며 75개국에서 3억 5,000만 명 이상의 독자를 거느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꼰대스럽지’ 않은 면모는 타고났다는 말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만화가 예술이 될 수 있는가, 없는가란 민감한 문제에 슐츠의 답변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만화는 예술이 아니기 때문에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 “최근에는 코믹 스트립을 미술관에 전시하여 그것의 순수예술성을 증명하려는 시도가 유행하는 모양이다. 칭찬할 만한 시도이긴 하지만 의문이 남는다. 우리가 무언가를 구별 짓는 방식이 그 목적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 책에는 ‘피너츠’를 시작한 계기와 매일매일 어떻게 아이디어를 떠올리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얘기들이 많다. 한 가지만 얘기하면 슐츠는 연재 초기부터 마지막까지 ‘피너츠’란 제목을 끔찍이 싫어했단 것이다.

오픈하우스에서 출간된 ‘스누피와 친구들의 인생 가이드’는 ‘피너츠’ 대사들에서 배우는 인생 철학이다. 소소한 불운이 따라다니지만 결코 비관하지 않는 소년 찰리 브라운과 담요에 이상 애착 증세를 보이는 라이너스, 거침 없이 삶을 돌파하는 루시,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철학적인 개 스누피까지, 삼등신의 사랑스런 캐릭터들이 나누는 대화는 버거운 세상살이를 별 것 아닌 것으로 바꾸는 마법을 발휘한다. “인생에서 불쾌한 일들을 피하려고 하는 것은 잘못이지만 이제부터는 그렇게 해볼까도 생각 중이야”란 찰리 브라운의 말처럼.

찰리 브라운의 아버지 찰스 슐츠. 1950년부터 2000년까지 50년간 피너츠를 그리면서 단 한 번도 다른 사람의 손을 빌지 않았다. 북스토리 제공
찰리 브라운의 아버지 찰스 슐츠. 1950년부터 2000년까지 50년간 피너츠를 그리면서 단 한 번도 다른 사람의 손을 빌지 않았다. 북스토리 제공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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