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 둔화로 수요 줄고
신흥국 생산 늘며 공급은 과잉
셰일가스 특수노린 강관업체도
국제 유가하락으로 고전 못 면해
휴폐업 속출 속 연관업체도 휘청
작년 포항 떠난 근로자만 1500명
원가절감 등 몸부림 불구 먹구름만
/사상 최악의 경기를 보이고 있는 경북 포항시 철강관리공단 내 한 업체 입구에 공장 매매를 알리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포항=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경북 포항과 전남 광양의 철강 신화가 무너지고 있다. 철강업계의 불황으로 수출과 내수가 급감하면서 올해도 원가절감과 구조조정의 쓰나미가 닥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세계 철강산업은 중국 등 신흥국의 생산능력이 확대되는 반면 경기 둔화로 수요가 줄면서 공급과잉이 심화하고 있다. 2014년 기준 세계 조강생산능력은 23억5,000톤인데, 과잉설비가 7억 톤이며 이중 4억톤이 중국에서 발생한 것이다.
국내 철강회사들은 중국의 수요증가 등에 대응해 대형 설비투자를 추진했으나 최근 수요부진 등 대내외 여건 악화로 공급과잉을 빚으면서 문닫는 업체가 속출하고 있다.
지난해 말 277개 철강회사의 공장 345곳이 있는 포항 남구 호동 포항철강관리공단. 경기 악화로 운영난에 내몰린 업체들이 하나 둘 문을 닫으면서 공장 매매를 알리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6개월 전만 해도 경매로 나온 공장을 보기 어려웠는데 지난해 11월부터 12월 중순까지 대구지법 포항지원에는 무려 10곳이나 공장경매가 쏟아졌다.
포항철강산업단지관리공단이 집계한 2015년 10월 말 산단 동향 보고서가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 공단 내 입주업체 277개사 가운데 J사 등 16개 업체가 휴ㆍ폐업에 들어갔고, 포스코플랜텍, 아주베스틸, 대신철강 등 10여 곳은 법정관리 중이다. 최근 몇 년 간 북미 셰일가스 특수를 노리고 투자를 늘렸던 S사 등 강관업체들은 국제유가 하락으로 수출이 급감하면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해 포항철강공단의 생산과 수출은 2014년 대비 두 자릿수 감소율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10월 말 현재 생산은 1조951억원으로 1년 전보다 16.5% 줄었다. 같은 달 철강제품 수출은 2014년 10월보다 22.1% 감소한 2억4,012만 달러에 불과했다.
구조조정도 가속화하고 있다. 동국제강이 지난해 7월 포항의 2후판공장을 폐쇄하고 충남 당진공장으로 일원화하면서 협력사까지 300명이 실직했다. 포항철강공단의 고용 인원은 2015년 10월 기준 1만5,525명으로, 1년 전보다 632명 줄어들었다. 한국은행 포항본부 관계자는 “협력사까지 합치면 지난 1년 간 1,500여명의 근로자가 철강 공단을 떠난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철강경기 악화는 포항시 재정도 위협하고 있다. 지난해 포스코가 포항시에 납부한 지방소득세는 321억원으로, 900억원을 납부한 2009년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이마저도 올해엔 290억 원대로 떨어질 전망이다. 포항철강산단의 쇠락이 가속화하면서 항만하역, 화물운송 등 연관 산업마저 휘청거리고 있다.
포항에는 올해도 고강도 구조조정과 원가절감이 예고되고 있다. 포스코는 2월 임원인사를 앞두고 실적부진 계열사 구조조정을 가속화하기로 했다. 19개사를 매각 또는 지분매각하고 내년까지 경쟁력이 없는 국내 계열사 25개, 해외 연결법인 64개사를 감축할 계획이다. 이미 외주파트너사를 대상으로 고강도 원가절감 전략을 통보한 상태다. 포스코와 함께 철강 빅3사로 꼽히는 현대제철, 동국제강도 구조조정을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세아제강, OCI, 현대종합금속 등 중견 업체들까지 대대적인 인력감축 도미노현상을 보일 전망이다.
포항철강관리공단 관계자는 “다른 업종은 경기가 바닥이면 앞으로는 치고 올라갈 것이라는 희망을 갖지만 철강업은 딛고 올라설 방법이 없다”며 “철강경기가 얼마나 더 추락할 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철강 산업이 주력인 광양국가산단도 매서운 칼바람을 맞고 있다. 올해도 중국 철강재의 공급 과잉과 저가 공략, 내수침체 등으로 철강업계의 전망이 그리 밝지 않는데다 포스코 광양제철소의 원가절감과 구조조정이 중소기업에 몰아치고 있는 것이다.
광양제철소는 올해부터 외주파트너사와 기존 계약방식을 바꿔 경쟁입찰제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분야별 조업지원 및 전문지원 업무를 맞고 있는 광양제철소 외주파트너사는 모두 53개 업체다.
광양국가산단의 한 기업 임원은 “광양제철소가 철강재의 국제적인 경쟁 심화로 단가를 낮추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직면해 있는데다 올해는 영업이익이 지난해보다 20%이상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비용 절감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경쟁입찰로 납품 단가와 이윤이 줄고 일감까지 없어지면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광양산단의 30%를 차지하고 있는 운송업계의 위기감은 더 크다. 철강을 필요로 하는 선박 수주가 줄고 내수경기 악화로 신규 설비투자마저 감소한데다 국내 업계가 중국, 일본과의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수출물량을 늘리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서다.
업계 관계자는 “가뜩이나 상황이 안좋은 판에 내수물량마저 수출로 전환하면 국내에서 운송할 물량 자체가 사라져 운송업계가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광양제철소를 포함한 광양국가산단은 제조, 운송, 시멘트 등 80여개 기업이 조업하고 있다.
고용도 불안정하다. 신규 취업은 줄고 계약직은 연장을 하지 않는 업체가 늘면서 근로자들이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광양상공회의소는 매년 지역 중소기업에 300여명의 신규 취업자를 알선했으나 지난해에는 구인 희망 업체가 급격히 줄어 신규 취업자가 20% 이상 감소했다.
광양의 한 중소기업 대표는 “산단 입주 기업 경영자를 만나면 장기 불황으로 힘들다는 목소리만 내는 실정”이라며 “정규직 감원 계획은 없지만 계약직은 연장하지 않는 방법으로 인력을 점차적으로 감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광양=하태민기자 hamong@hankookilbo.com 포항=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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