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 여사와 상의는 안 한 듯
“60여년 정치 인생 처음으로 몸 담았던 당을 저 스스로 떠나려고 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가신그룹인 동교동계의 좌장 권노갑(86)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은 12일 탈당 기자회견에서 “참담한 마음으로 선다”며 입을 열었다. 1961년 DJ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한 뒤 2009년 DJ 서거 시까지 반세기 가까이 DJ를 보좌하며 ‘DJ의 분신’으로 불렸던 그가 DJ를 계승하는 정당을 자진 탈당하는 데 대한 착잡한 심경과 회한을 드러낸 것이다. 권 고문은 1995년 이른바 ‘이기택 민주당’에서 탈당한 적은 있지만, 당시는 정계에 복귀한 DJ가 새로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에 합류하기 위한 것으로 지금과는 사정이 다르다.
권 상임고문은 이날 회견에서“저는 평생을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하며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이끌어왔지만, 정작 우리 당의 민주화는 이루지 못했다”면서 자신의 탈당을 부른 친노 진영을 겨냥했다. 그는 “당 지도부의 폐쇄적인 당 운영과 배타성은 이미 오래 전부터 국민들 사이에 널리 회자되어 왔다”며 “연이은 선거 패배에도 책임질 줄 모르는 정당, 정권교체의 희망과 믿음을 주지 못한 정당으로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확신과 양심 때문에 행동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미워서 떠나는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홀로 기자회견을 마친 권 고문은 아무런 질문도 받지 않은 채 곧바로 국회를 떠났다.
국민의정부 시절 ‘물밑의 2인자’로 야권을 조율했던 그는 2000년 2월 당내 쇄신파의 요구로 최고위원직을 사퇴, 2선으로 물러난 이후에도 호남을 대표하는 야권 원로로서의 존재감이 상당했다. 실제 그는 당 안팎에서 각종 사안이 불거질 때마다 물밑 조율사의 역할을 맡았고 안철수 의원 탈당으로 분당 조짐이 보이던 지난해 12월 18일에도 문 대표를 만나 '2선 후퇴와 비상대책위 구성’을 제안했다. 그러나 문 대표가 이를 거부하면서 결국 친노 그룹과 결별을 결심하게 됐다.
권 고문은 그러나 DJ의 부인 이희호 여사와는 탈당에 대해 상의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권 고문은 언론 인터뷰에서 “이 여사는 현실정치에 관여 안 한다”고 선을 그었다.
권 고문은 향후 계획에 대해 “제대로 된 야당을 부활시키고 정권교체를 성공시키기 위해 미력하나마 혼신의 힘을 보태겠다”고만 밝혔다. 당초 국민의당 합류가 예상됐지만 일단 제3지대에 남아 호남 신당세력의 통합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송은미기자 mys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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