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제61차 중앙집행위원회(중집)가 열린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본부 대회의실. 정부의 불도저식 ‘노동개혁법안’ 추진 때문에 회의 전 노동계 안팎에서는 이날 중집이 ‘9ㆍ15 노사정 대타협 파기’선언을 위한 요식행위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하지만 오후 2시에 시작된 회의는 길어야 2시간 정도 걸릴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정회와 속개를 반복하며 4시간이나 계속됐다.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은 모두 발언에서 “10일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을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한계를 절감했다. 모든 것은 사필귀정”이라며 정부ㆍ여당의 ‘노동개혁법안’ 일방 추진으로 노사정 합의를 깨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분위기를 띄웠다. 하지만 입장은 쉽게 정리되지 못했다. 정부와의 친소(親疏)관계가 제 각각인 산별조직들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보수성향인 한국노총 운수물류총연맹 소속 자동차노련, 항운노련, 해상노련 대표자들은 노사정 합의를 유지하자는 목소리를 냈다. 기간제법이 통과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간제법안의 쟁점은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는 것이지만 ‘선박, 철도, 항공기, 자동차를 이용해 여객을 운송하는 사업 중 생명ㆍ안전과 밀접하게 관련된 업무에는 기간제 근로자 사용을 제한한다’는 규정도 포함돼 있어 “사용기간 연장 조항에 대한 절충점을 찾아서라도 법안 통과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류근중 자동차노련 위원장은 회의에서“8만5,000여명의 연맹조합원이 합의 파기를 반대하고 있다. 시민단체가 요구한다고 파기할 필요가 있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반면 개혁성향의 화학노련ㆍ금융노조ㆍ공공노련은 “즉각 노사정 대타협 파기 선언을 하고, 투쟁계획을 밝혀야 한다”고 맞받았다. 이들은 이미 지난 해 9월 대타협 직후 “최악의 노사정 합의를 했다”며 지도부 총사퇴를 요구하기도 했고 현재도 대타협 파기를 요구하며 국회 앞에서 천막농성도 진행 중이다. 김만재 금속노련 위원장은 “한국노총이 결단을 내리지 못하면 정부는 지금보다 더 높은 수준의 노동개악을 추진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난상토론이 이어지면서 오후 6시쯤 표결로 향후 방향을 결정하자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표결은 내부 분열 우려가 있어 절충안으로 가닥을 잡자”는 쪽으로 중지를 모았고 ‘노사정 대타협 파탄 선언’을 하되, 자동차ㆍ항운ㆍ해상노련의 요구대로 노동개혁 5대 법안 철회 등 정부의 입장변화가 있을 경우 대타협을 되살릴 수 있다는 단서를 달기로 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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