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라는 거대한 함선이 총체적 위기로 허우적대고 있다. 경제위기 때문이 아니다. 경제성장의 중요한 역할을 했던 컨트롤 타워와 정책 조정기능이 상실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이 처한 경제위기는 단기간에 경기부양책으로 해소될 수 없다. 예를 들면 중국 경기가 좋아도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 약화로 반대로 중국 경기가 좋지 않으면 수출이 줄어들어 우리에게는 위기이다. 따라서 우리는 장기적인 전략 하에 경제 구조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한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
현 정부의 정책 공약이었던 창조경제를 근간으로 한 근혜노믹스도 한국이 직면한 경제 위기를 극복할 정책 방향 중의 하나였던 것은 사실이다. 영국 등 유럽 국가들에서 유행하였던 창조산업은 국내총생산의 5%에 불과하여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기 에는 미흡 한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의 장점인 정보통신기술(ICT) 부문과 결합했을 때의 창조산업은 분명 하나의 미래 지향적 혁신산업이다. 그렇지만 그것뿐이었다. 명목이 유지되는 것은 대통령과 경제수석이 찾는 창조경제혁신센터뿐이고 그 다음은 창조와 혁신에 대한 역주행과 모순 덩어리 정책이다.
먼저 국회의 역주행을 보자. 재벌에 특혜를 준다고 하며 5년 주기로 면세점 특허제도를 바꾸었지만 결국 다른 재벌이 차지했다. 2,000여명의 근로자들만 직장을 잃었다. 최근 국회 통과된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은 할 말을 잃게 한다. 온라인으로 거래하는 경매시장을 창업해 업계의 혁신을 불어 일으킨 청년사업가가 폐업을 한다고 한다. 정부의 어느 누구도 이들 법안이 통과될 때 문제점을 제기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 국토교통부는 많은 선진국들이 허용하여 택시 산업에 혁신을 일으키고 있는 우버택시 영업을 불법화했다.
정부 정책의 모순도 심각하다. 박근혜 정부 2기 경제팀부터는 근혜노믹스라는 정권 출범 슬로건은 사라지고 초이노믹스로 대체되었다. 핵심 내용은 창조와 혁신이 아니라 부동산 시장 규제완화를 통한 내수활성화와 소득주도 성장론이다. 내수활성화를 위한 부동산 시장 규제완화는 부동산 담보 대출 확대로 이어졌고 최근에는 소비지출 확대를 위한 블랙프라이데이 및 소비세 인하 등을 통한 소비확대 정책이 실시되었다. 단기적으로 어느 정도 소비가 증가하는 효과는 있었으나 결국은 소득증가 없는 가계부채의 급속한 확대로 이어진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소득주도 성장론은 어떤가? 임금주도 성장이론이 둔갑하여 소개되면서 새로운 경제성장 정책으로 소개되었다. 이를 위하여 민간 기업의 배당 확대, 사내 유보금 과세 등의 정책이 쏟아져 나왔다. 이 또한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온 것도 아니다. 흥미로운 것은 소득주도 성장론을 설파하면서 정작 공무원들에게는 거의 강압적으로 임금피크제를 실시하도록 해 오히려 임금하락을 유도했다는 점이다. 정년 연장대상이 아니었던 국책연구원들까지 포함시켰다. 자신들의 비용부담이 되는 공무원 임금은 삭감하려고 하면서 민간 기업의 임금은 인상하라고 하는 자가당착적 정책을 실시 한 것이다. 이론이 틀린 것이 아니라 소득인상을 위해 가능하지 않은 정책 수단을 사용하려 한 모순된 정책을 주장한 것이다.
올해도 경제부처의 신년 업무보고가 예정돼 있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내수를 살리기 위한 주요 정책 수단이 내·외국인 상대로 할인행사를 통하여 소비를 확대하는 것이 될 것 같다고 한다. 이 정책에 급속히 증가하는 가계부채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정책도 포함될지 궁금하다.
개발독재 시대 경제기획원 형태의 정부 컨트롤 타워는 이제 더 이상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지만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하며 일관적인 정책 결정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위에서 일방적인 지시가 아니라 정책입안자들이 자발적으로 공유하고 선택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컨트롤 타워와 정책 조정기능이 요구된다. 이것이 우리 경제가 직면한 위기이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ㆍ그린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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